국립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건물 61호관 앞 등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벤치 옆에는 성악가 고 강영중 교수를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매주 창원대에 수업을 가다보니 오고가며 추모비를 통해서 지난 학창시간을 회상하기도 하며, 그의 제자이자 우리지역에서 성악가·지휘자·합창단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화수 선생을 만나기라도 한 날엔 추모비 앞에서 지난날의 교수님과의 추억에서부터 오늘날 우리지역 음악계의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필자가 1992년 창원대에 입학했을 당시 창원 음악계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문 연주단체로는 창원시립교향악단과 창원시립합창단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외에도 여러 민간단체들이 생겨났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경남오페라단의 창단 공연이었다. 우리지역의 여러 성악가선생님들부터 당시 강영중 교수님 제자 중 막내격인 신화수 선생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리고 틈틈이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우리는 학도다"라고 강조하시며 학도의 길을 강조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선하다.

교수님의 그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에 이 지역에 오페라단을 만들고 공연할 수 있었으리라.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오페라 한편 제작하여 올렸다가 쫄딱 망한 성악가가 한둘인가…. 아마 강영중 교수님 특유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5회 정기공연 때까지 제대로 된 극장도 없이 후원금 모으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경남오페라단이 자리 잡기까지 열과 성의를 다하시는 모습은 우리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마지막 작품으로 1997년 여름 강영중 교수님께서 작고하자 창원 오페라계는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현재 단장인 정찬희 씨가 2000년 단장을 맡고 제 8회 정기공연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함으로써 이를 기점으로 이듬해 경남오페라단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오늘날의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그동안 10주년을 비롯해 창작오페라 논개 등 다양한 기획과 공연들로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며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해서 '투란도트'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한다. 개인적인 연주일정으로 직접 가보지는 못하였으나 주위의 지인들과 제자들로부터 대단히 수준 높은 무대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역 음악인으로서 참 기분이 좋다.

그런데 당연히 같이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겠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 것은 20년 세월동안 외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룬데 비해 아직 경남오페라단을 통해 지역 스타 성악가 한명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남오페라단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무대에 서고 싶어도 오디션 한 번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시절, 올라갈 무대가 없던 시절 많은 지역 성악가들에게는 꿈의 무대였다. 이 무대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도 좋은 성악가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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