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이 만난 사람] 박 국회의장 인터뷰

박희태 국회의장과 인터뷰 약속을 잡은 후, 관련 자료들을 뒤적이던 중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영화전문잡지 < 씨네21 >에 실린 임범 감독 인터뷰였다. 임 감독은 9월에 극장 개봉한 다큐멘터리 < 술에 대하여 >를 연출했는데, 인터뷰에서 박희태 국회의장 출연이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고 있었다.

"폭탄주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당연히 박 의장을 떠올렸는데, 취재 과정에서 그가 춘천지검장으로 있었던 1984년에 지역 유지들과의 모임에서 처음으로 폭탄주를 마시게 됐고, 그 해 전국검사장회의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돌린 것이 폭탄주의 시초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의장이 출연한다고 할 때만 해도 업됐지. 역사적인 증언이잖아."

그러나 박 의장의 출연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본인은 인터뷰하겠다고 했는데 주위에서 만류했는지 결국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보는 순간 '옳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범 감독이 듣고 싶었던 '역사적인 증언'을 내가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본보 김주완 편집국장이 박희태 국회의장을 인터뷰 하고 있다.

폭탄주 시초… 1984년 전국검사장회의 자리서 돌려

-옛날에 남해에서 선거 때 의장님 동행취재를 하던 중 한 식당에 들어가서 의장님이 직접 제조해준 폭탄주를 마셔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폭탄주를 의장님이 최초로 보급했다는 설이 있는데, 춘천지검장으로 계실 때 그랬다는데요. 그게 사실인가요?

"그게 다른 사람들이 연구해본 결과 그게 맞는답니다(웃음). 거기에 대해서는 책에도 많이 나와 있지. 책도 여러 권…. 참, 그 양반 책을 한 번 구해봐야겠는데…. 거 씨이오(CEO) 있잖아."

옆에 있던 한종태 국회대변인이 "기자가 쓴 책도 있죠. 이상일 기자가 쓴…."이라며 거들었다.

"아니, 그거 말고, 씨이오가 쓴 연구서도 있는데, 아주 유명한 기업의 씨이오였는데…, 이름이 뭐더라? 그 책을 한 번 구해봐."

끝내 박 의장은 그 책의 저자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기자도 이상일 아시아경제신문 논설위원이 2001년에 쓴 <폭탄주, 그거 왜 마시는데?>라는 책과 이희열 연합뉴스 기자가 쓴 <말랑말랑 여의도 보고서>, 그리고 여러 매체에 실린 기사들 외에는 찾지 못했다. 혹시 박 의장이 말한 CEO의 책을 아시는 독자님이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어쨌든 박 의장이 직접 증언한 한국형 폭탄주의 유래는 이랬다.

"내가 83년에 강원도에서 춘천검사장을 할 때, 그때 거기서 우리 기관장들끼리 의논해서 맨들었어. 술 좀 적게 먹으려고. 당시는 군인들이 아주 좀 주도하던 5공 초 아닙니까? 83년에 술 좀 적게 먹을라꼬 '강원도주'다 이런 이름하에서 개발한 게 폭탄주였어."

-그때 군인들이 맥주도 안 섞고 아예 양주를?

   
 

"응, 그래 그 문화가 아주 그때는…, 군사문화가…."(웃음)

-그렇게 먹는 걸 보고 맥주를 섞어서 좀 순화해서 먹자는 거였네요?

"양은 같고… 도수는 약하게, 그렇게 연구해서 만든 거야. 별별 궁리를 다 하다가 거 맹글어 낸거야."

-요즘은 약주 좀 하십니까?

"뭐 술, 폭탄주 가끔, 가끔…."

폭탄주에 대해선 여기까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폭탄주는 양주 대신 소주와 맥주를 혼합해 마시는 '소폭'(또는 소맥)으로 대중화됐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새는 듯하지만, 박 의장과 동향 출신인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가끔 술자리에서 소폭을 제조해 돌린다. 김 지사는 하이트(Hite)라는 상호가 새겨진 맥주잔의 '희태(Hite) 선(線)'에 수위를 딱 맞춘다. 그러면서 하는 말. "감히 국회의장님을 넘을 순 없죠."

인터뷰 중 김두관 지사 이야기가 나오자 박 의장은 "고향 후배인데, 다 잘 되도록 빌어야지" 하고 덕담을 던졌다.

국회 비정규직 100명 정규직 전환

언론에서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최근 국회에서는 노동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 일어났다. 국회 사무처와 도서관 등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또한, 기간제 근로자 157명도 일정한 심사를 거쳐 신분이 보장되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한편 청소용역 165명도 이른 시일 안에 국회 직영으로 전환해 신분 보장을 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들은 전적으로 박희태 의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상당히 의외인데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아니, 전혀 별다른 계기는 없었고, 한나라당 대표도 하면서도 항상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었어요.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근로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들을 안정시켜주지 않으면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사정 3자가 그동안 여러 번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했고, 우리 당도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을 하려고 했죠. 그 결과 입법적으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고는 하지만,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애는 해결은 아니고, 비정규직을 뭐, 2년 이상은 고용을 못 한다, 그 이상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해야 한다는 식의 근본적인 해결이 전혀 안 되어 있고 형식적으로만 돼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국회의장으로 와서 보니까 이 비정규직이 어디 기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국회의 문제더라. 우리 국회에도 수백 명의 비정규직이 여러 가지 고통받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난 그전에는 우리 국회에는 비정규직이 없는 줄 알았어(웃음). 그래서 그 사람들하고 만나서 대화를 해 보고, 어떻게 국회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사무처에 내가 강력하게 주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국회에는 비정규직을 없애겠다. 비정규직 없는 국회를 만들자. 그래서 몇 달 동안, 작년 9월부터 직원들과 대화를 하고 이렇게 하기로 한 겁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에서도 잘 안 하는 일인데, 입법기관의 이런 조치가 다른 공공기관에도 영향을 많이 끼쳐야 할 텐데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요. 다른 행정기관도 안 하는 걸 선도적으로 한 것은 정당에 몸을 담아 있었고, 국민과 고통받는 근로자들과 같이 지내봤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다른 중요성이나 절박함을 느끼기 때문에 저는 우리 국회에서 이렇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다른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체에서도 좀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박 의장이 생각하는 비정규직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신분이 불안정해 조직에서 소외되고 일의 능률이 저하될 수 없다는 것, 둘째, 이것은 비정규직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는 등 사회적 갈등의 주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그러나 박 의장은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었다. 법적 해결 노력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신분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장이나 기업체 사장이 비정규직 문제 해소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를 떠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진단과 그의 선의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듯 했다.

   
 

-18대 국회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요. 비정규직 문제 말고도 국회의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뭔가요?

"예, 뭐…. 제가 요즘 우리나라는 민주화 산업화를 상당히 성공적으로 추진을 했고, 이제는 우리가 세계에 진출해야 할 시기다. 국민이 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 사실 한류열풍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고 우리가 만든 산업 제품들이 지구촌 곳곳에 진출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무역이 1조 달러에 이르는 국제적인 무역강국이 됐고, 또 국제사회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국회에서 뒷받침할 수 없을까 해서 작년에 G20 의장회의를 했습니다. 세계진출의 큰 분위기를 전하고 우리가 해외 진출을 하는데 뒷받침을 하도록, 그러한 계기를 하나 만들었다는 걸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양산 지역구에서 '여인천하'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특별히 여성을 많이 챙기는 이유가 있습니까?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니까.(웃음) 여태까지 전통적인 생활습관이나 이런 게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었고, 그래서 여성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사회발전을 위해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강조하고자 '여인천하'도 만들고 했는데, 이제는 여성의 능력이 간접적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시대가 됐다."

2012년 대선·총선 화두는 복지

-지역구를 그렇게 챙기시니까 내년 총선에서도 당연히 출마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년에 어떻게 할 거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지 않겠나. 내 거취에 대해서는 상식과 순리에 의해서 판단해보면 다 결론이 나와 있는 겁니다. 물어볼 필요도 없어."(웃음)

그는 춘천·대전·부산지검과 부산고검 검사장을 거친 법조인이자, 1988년 민주정의당으로 고향 남해에서 국회의원이 된 후 줄곧 정치권을 지켜온 6선 관록의 정치인이다. 그가 국회의원으로 지낸 햇수는 인터뷰어의 기자직 경력보다 많다. 1938년생으로 올해 일흔셋이다.

-국회의 수장이시고, 정치권의 어른이신데, 그동안 정치를 해오시면서 느낀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지,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시는지.

"내 생각에는, 정치는 투쟁이 아니고 타협입니다. 타협이야말로 민주정치의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 반독재 투쟁시절의 전통 때문에 정치는 투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앞으로 타협정치의 꽃을 피워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국회라는 게 운영이 되고 존립할 수 있는 겁니다. 국회가 투쟁의 장이 되어선 안 됩니다."

-얼마 전에도 의장님께서 직접 복지와 성장을 강조한 적이 있는데, 최근 무상급식을 비롯해 복지 논쟁이 치열합니다. 복지에 대한 평소 소신이 있다면?

"복지는 오늘의 화두입니다. 이제 정치권에서도 복지 빼놓고는 다른 화두가 더는 없을 정도로…. 국민 복지를 확대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하죠. 그런데 복지라는 것은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성장 없이 복지만 확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둘이 아니고 하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지와 성장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경제 활력 회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국민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에도 복지 화두가 이슈가 될까요?

"될 겁니다. 총선 대선 모두 복지가 큰 화두가 될 겁니다."

-남아 있는 18대 국회를 원활하게 이끌기 위한 복안이 있다면?

"제가 이번에 정기국회 마지막 개회사를 통해서도 의원들께 말씀드렸지만, 국가가 유지되려면 국민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공자님도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군대도 아니고 식량도 아니고 믿음이다, 그래서 소위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우리 국회가 무엇보다도 정쟁보다는 정책을 내세우는, 그것으로서 서로 토론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서민들의 어려움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국회가 되어 민생법안도 시의적절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국회가 제 기능을 회복하려면 투쟁보다 타협으로 가야 합니다. 타협은 절대 패배나 굴복이 아니라 모두가 승리하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신불립을 언급하셨지만, 과거 대변인 시절에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많이 구사하셨는데, 의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가 있다면?

"뒷방에 가면 써놓았는데,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가리키며) 저것도 내가 좋아하는 글귀지.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고,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뒷방에 걸려 있는 것은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인데,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야. 물처럼 행동해야 한다, 물은 계속해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모든 것을 깨끗이 청소를 시켜주고 주변에 만물에 생명의 근원을 제공하며, 자기의 형체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그 세력이 불어나서 마침내는 큰 강을 이루고 대해로 흘러간다는 거지. 노자가 이야기한 건데, 나는 그런 게 좋아 보이데?"

-특별히 중국 고서를 공부하셨나요?

" (웃으며) 공부는 무슨 공부를 해. 남해서 서당에서 했지."

-참,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 남해군을 방문했다가 늘어서 있는 공무원들을 보고 의장님이 갑자기 되돌아 나가는 바람에 정현태 군수가 잡으러 뛰어가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그때 왜 그러셨나요?

"미안해서 그랬지. 내가 뭘 잘났다고…. 내가 남해 국회의원도 아니고 양산 국회의원인데, 군청 간부들이 좍 나와서 도열해 있기에 너무 미안하고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더라고…."

-마지막으로 고향 사람과 경남도민들께 인사 말씀 한마디 해주시죠.

"경남이 제일 좋지 않습니까? 국회의장으로서도 우리 경남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남도민일보가 날로 발전하는 걸 보고 상당히 마음이 흔쾌합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이렇게 성장한다는 것은 신문사 여러분의 노력이 투입됐다고 생각하고, 경남도민들이 도민의 신문을 사랑하고 많은 지원을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월간 피플파워'도 도민에게 사랑받는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박희태 의장은 작년까지 국회 출입을 했던 경남도민일보 정봉화 기자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새로 국회에 출입하는 조문식 기자를 잘 부탁한다는 말로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국회의장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회 사무처에서 미리 준비한 녹음기가 탁자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대개 인터뷰 녹음은 인터뷰어가 하는 게 상례인데, 인터뷰이 쪽에서 녹음기를 준비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원의 말을 왜곡하여 기자나 매체의 입맛에 맞도록 보도함으로써 말썽을 빚는 사례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박 의장이 가르쳐 준 인터뷰이의 요령이었다. 자신의 말이 언론에서 왜곡 당하지 않으려면 녹음기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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