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밤 속 애벌레는 꿀꿀이바구미

형 내외가 신혼 때 마트에서 장을 보다 다툰 이야기다. 다툼의 원인은 다름 아닌 밤이었다. 형수가 밤을 마트 손수레에 넣었더니 형은 왜 맛없는 밤을 비싼 돈 주고 사 먹느냐고 형수를 나무라고, 형수님은 왜 밤이 맛없느냐 아내가 먹는데 돈이 아깝냐며 섭섭하다며 다투셨단다. 형은 좋은 밤은 내다 팔고 작고 상한 밤들을 먹어야 했던 거창 촌놈 출신이고, 형수는 가을 별미로 군밤을 즐겼던 도시 처녀라 식성 차이로 다투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결혼 초 아내가 밤, 고구마를 좋아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으니 형과 나의 사정은 비슷했다.

밤송이가 떨어지는 가을이면 우리 네 남매 가족은 밤을 줍기 위해 거창 신원 산골로 갔다.

말이 좋아 밤을 줍는 것이지 밤을 줍는 행위는 밤밭 제초, 장대로 밤나무 털기, 밤송이를 발이나 손으로 까기, 한 톨 한 톨 주워 담기, 무거운 밤 자루 산 아래로 옮기기, 작고 상한 밤을 가리기가 포함된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허리를 숙이고 일해야 하기에 허리는 쑤시고 마른 밤송이의 가시는 매우 날카롭다. 특히 밤 밭 산모기는 어찌나 독한지 옷을 뚫고 우리를 물어댄다. 이렇게 밤 줍는 일이 고되니 우리 남매에게 밤은 안 줍고 안 먹는 편이 좋았다.

밤송이를 까니 꿀꿀이바구미 애벌레가 나왔다.

저번 주 부모님을 모시고 밤을 줍기 위해 오랜만에 거창 밤밭을 찾았다. 밤을 주워보니 올해는 유난히 벌레 먹고 썩은 것들이 많다. 멀리 있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그러려니 하지만 힘들게 주운 밤들을 가릴 때 많은 밤이 벌레 먹어 마음이 쓰리다. 밤을 가릴 때 밤에 구멍이라도 있으면 벌레가 있는 줄 알지만 가끔 깨끗해 보여도 큼지막한 애벌레가 밤 속에 숨어 있을 때는 신기하다.

밤 속에 있는 애벌레는 밤바구미라고도 불리는 꿀꿀이바구미의 유충이다. 밤 속에 꾸물거리는 흰색 유충이 징그럽다가도 어찌 보면 아기 팔처럼 포동포동한 것이 귀엽다. 주둥이는 갈색인데 날카로운 입을 가지고 밤을 먹으며 밤 속에 굴을 만들어 유충시절을 보내게 된다.

애벌레는 밤송이가 떨어지면 그제야 밤에서 나와 땅 속으로 들어가 월동하고 다음해 번데기를 지나 성충이 된다. 성충은 쌀바구미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약 9mm정도 된다. 이들이 다시 수확하기 전 즈음 밤에 입으로 구멍을 파서 그 속에 알을 낳는다.

우리도 집에서 어느 정도 자라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듯 벌레 따위도 밤이라는 집에서 땅이라는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고 나온다. 자연을 공부할수록 세상에 미천한 것들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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