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품같은 남해풍광 찌든 가슴 달래

고성은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동해면만 해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데다 군데군데 들판도 펼쳐져 있고 한가운데는 낮다고는 할 수 없는 산들이 구절산(521m)말고도 철마산과 수양산이 우뚝하다.
이 가운데 가장 위쪽에 있는 구절산은 크지 않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아기자기함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데 남다른 맛이 있다.
구절산 오르는 길은 외곡마을을 지나 나오는 구절폭포에서부터 비롯된다. 폭포는 길 오른쪽에서 바깥쪽으로 툭 튀어나오려는 듯 버티고 서 있다. 거무튀튀한 바위 색깔이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래위로 단풍잎이 하늘거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물이 바짝 말라 아래쪽 바위 소(沼)가 더욱 밋밋해 보이지만, 여름 아니라 가을철에도 물만 좀 흘러주면 이것 하나만으로 구절산을 찾은 보람으로 삼아도 좋을 성 싶다.
오르다 보면 등산길 아래위쪽으로 자잘한 돌로 이루어진 너덜겅이 나온다. 대체로 자갈보다 조금 큰 돌들이 아래위로 널려 있고 사람들이 곳곳에다 돌탑을 쌓아 놓았는데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저녁노을을 마주해 볼 때는 신앙의 크기와 사람 마음의 나약함이 돌무더기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하지만 때때로 고사에 썼을 해물이나 과일 따위가 둘레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 ‘빌어봐야 뭘 빌었겠어’ 하며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너덜 위로는 집채만한 바위들이 우뚝 서 있고 이를 돌아 오르는 길은 단풍이 덜 든 활엽수가 감싸고 있는데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어서 호젓할 뿐만 아니라 정겨운 느낌까지 준다. 구절산 꼭대기에 오르면 둘레에 있는 바다와 산과 들과 마을을 두루 훑어보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북서쪽으로는 거류산과 벽방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바짝 다가앉은 앞쪽에서는 반쯤 말라붙은 저수지랑 새로 갈아놓은 들판과 다닥다닥 붙은 인가들을 볼 수 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는 당항포만과 당동만이 있는데 이쪽과 저쪽 사이의 너비가 아주 좁다. 덕분에 사이에 끼여 있는 바다는, 발아래 저수지보다는 커 보이지만 마치 호수 같다. 남동쪽 철마산과 수양산 너머로는 남해 바다의 시원한 풍경이 등산객의 가슴을 씻어준다.
해 짧은 겨울철, 쉬는 날에 느지막이 일어나 가도 조급증 내지 않고 여유 있게 거닐 만큼 산 타는 거리가 길지 않다는 게 구절산의 또하나 남은 마지막 즐거움이다. 게다가 오르막내리막이 심하지 않아 편하게 오갈 수 있다.
저녁 5시만 해도 어둑어둑해지는 요즘, 낮 2시께에 집을 나서도 이처럼 온전하게 둘러보고 올라볼 만한 좋은 산이 가까이 있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복 가운데 하나다.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에서는 마산 월영동 경남대학교를 지나 14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진동면 소재지와 마산국군병원을 지나 마주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계속 달린다. 고성을 거쳐 통영.거제로 가는 길이다.
배둔을 거쳐서 고성읍 근처에 가면 고가도로가 나온다. 읍내로 빠져들지 말고 고가도로를 타고 가다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신호대에서 좌회전하면 동해면 일주도로와 만난다. 비보호 좌회전 신호라서, 차량 흐름을 보다가 적당할 때 꺾어들어야 한다.
진주쪽에서는 33번 국도를 따라 오다가 고성읍을 우회한 다음 동해면 일주도로로 합치거나 2번 국도를 따라 마산쪽으로 오다가 삼거리에서 14번 국도로 빠져들어도 되겠다.
아직은 동해면이 아닌 거류면인데 곁가지로 새지 말고 곧장 7km 남짓 달리다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다음 100m도 채 못가 나오는 외곡마을로 접어들면 된다. 마을 복판을 질러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 끝까지 가면 현대식 건물로 된 폭포암과 구절폭포가 나온다.
폭포 왼쪽에 있는 폭포암 경내를 지나 뒤쪽 능선으로 돌아 올라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30분 가량 더 가면 주릉이고 여기서 다시 정상까지는 20분을 더 걸어야 한다. 내려올 때는 가던 길로 되돌아올 수도 있고 아니면 주릉을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 길을 골라잡아 폭포암 오른쪽으로 나오는 산길을 걸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구절산 꼭대기에 이르는 길은 폭포암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두 개가 있는 셈이다. 동해면 일주도로를 따라 돌아보려면 아무래도 자동차를 몰고 가야 하겠다. 하지만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지 못할 까닭도 없다. 마산남부터미널에서 고성까지 버스로 온 다음 당동마을을 지나가는 양촌마을행 버스를 타고 가다 봉암마을이나 외곡마을 앞에서 내리면 된다. 내려서 폭포암까지는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가볼만한 곳-동해 일주도로

고성은 겨울철 마라톤 전지 훈련지로 이름나 있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포근한데다 교통 환경이 깨끗해 선수들이 부담 없이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지훈련지로 이름을 드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게 바로 동해면을 한 바퀴 도는 1010번 지방도로다. 이 일주도로에는 정식 마라톤 코스가 마련돼 있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거류면 들머리에서 시작하는 마라톤 코스는 동해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면 끝난다. 가는 길목마다 표지판이 서 있어 찾아보기 쉽게 돼 있다.
하지만 마라톤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는 드물다. 대개 낚시를 즐기거나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로 갯내음 물씬한 바다 풍경을 맛보려고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알다시피 바다는 언제 보아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아침.한낮.저녁 가릴 것 없이 각도를 달리하는 햇살 따라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모터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것도 보기 좋고 고깃배 한두 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물결을 바닷가로 밀어붙여 주는 것도 정겹다. 또 갯바위까지 애써 가지 않고도 길가에서 바로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는 데도 많다.
일주도로를 따라 돌다가 배가 출출한 느낌이 들면 곳곳에 자리잡은 횟집에 접어들어도 좋다. 아니면 다시 빠져서 마산으로 가다가 배둔 있는 데서 오른쪽으로 틀어 당항포 국민관광지에 들러 한두 시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동해면 내산리에는 마산 끝동네 아랫소포쪽과 이어지는 다리가 놓여져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남해안 일주도로의 한 부분인 이 다리가 언젠가 뚫리게 되면 동해면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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