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44) 잃어버린 사슴 소리를 찾아서

단풍과 사슴

화투짝 가을 단풍에 왜 사슴 그림이 나올까? 처음엔 사슴 사냥철이라 사슴과 단풍을 그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옥희 교수의 <하이쿠와 일본적 감성>이란 책을 읽으면서 가을 단풍을 헤치고 우는 사슴 울음소리가 가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일본 이미지라는 것을 알고 무언가 허전했다.

"깊은 산에/ 단풍을 헤치고/ 우는 사슴의/ 소리 들을 제에/ 가을은 쓸쓸하네 "(사루마루 다유)

   
 

수사슴이 가을이 되면 짝짓기를 하려고 암사슴을 찾아 우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바로 사슴의 울음소리였던 것이다. 왜 한 번도 사슴 울음소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엔도 키미오라는 일본 사람이 쓴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책을 읽다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사슴이 멸종해 버렸기 때문에 사슴 울음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사슴의 멸종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 정리한 자료에 해마다 호랑이 표범과 함께 사슴도 잡았다는 자료를 보고 진짜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까지 사슴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해마다 잡힌 사슴 숫자가 10마리 내외로 노루의 수천 마리와 비교가 됐다. 왜 이렇게 사슴 숫자가 작을까?

조개무지와 사슴

다시 시계를 과거로 돌려 창원·마산·진해의 조개무지 시대로 돌아가 본다. 마창진 조개무지에서 나오는 동물 뼈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노루나 고라니가 아니라 사슴이라고 한다. 예부터 사슴은 고기는 식량으로, 뼈는 화살촉과 생활 도구로 쓰고 가죽까지 꼭 필요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고구려 고분벽화와 암각화까지 사슴 사냥 그림이 꼭 나온다.

창원·마산·진해의 조개무지에 사슴 뼈가 많았던 기록을 보면서 고라니나 노루가 아닐까 추측을 했는데 조사 기록은 고라니와 노루까지 구별하고 있었다. 진짜로 20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사슴을 많이 잡았던 것이다. 그 많던 사슴은 어디로 갔을까?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꽃사슴 고라니 노루 사향노루 누렁이

우리나라에 사슴이 다섯 종류 살고 있다. 꽃사슴(대륙사슴)은 옆집 아저씨들 몸보신에 좋아 멸종되어 지금은 동물원이나 사슴농장에만 살고 있다. 간혹 사슴농장을 탈출한 사슴이 야생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야생 토종 사슴은 멸종되었다.

사슴을 책에 따라 꽃사슴이나 대륙사슴으로 적어놓았는데 정식 명칭은 대륙사슴이란다. 일본사람들이 볼 때 대륙사슴이란 이름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봤을 땐 대륙사슴이란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이다. 사향노루도 사향을 얻기 위해 밀렵으로 멸종위기이다. 누렁이(말사슴, 붉은 사슴)는 북한 북쪽 위에 살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볼 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고라니와 노루뿐이다.

노루 궁뎅이는 희다.

장승업 <송록도>. /충북대박물관 소장

야생에서 도망가는 녀석을 보고 할매들은 노리(노로)라고 부른다. 노루는 갱상도 포준말로 노로 또는 노리라고 부르는데 색깔이 누렇다고 노루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99%의 노루는 노루가 아니라 고라니이다. 고라니도 몽골말로 누렇다는 뜻이다. 고라니, 노루, 누렁이 모두 색깔이 누렇다는 뜻이다.

노루는 금기시되는 징크스가 많다. 노루를 잡으면 사고가 생긴다. 노루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 노루가 짖으면 사람이 죽는다. 노루가 동네를 쳐다보고 울면 그 동네 불이 난다. 흰사슴은 영물로 진상하지만 흰노루는 좋지 않은 징조로 보았다. 우리 나라에 흰 동물은 모두 상서롭고 좋은 징조로 여겼지만 흰 노루만은 환영받지 못했다. 왜 이리 환영받지 못했을까?

노루와 고라니 구별법

우리가 노루나 고라니를 볼 때 보이는 것은 도망가는 녀석의 엉덩이다. 노루 엉덩이는 흰색이다. 그래서 도망가는 녀석의 엉덩이를 보고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구별할 수 있다. 뿔이 있다고 사슴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고라니 수컷은 뿔이 없지만 노루 수컷은 작지만 뿔이 있다. 그래서 이 녀석들도 깊은 산속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살고 있다. 멋진 뿔이 죄다. 제대로 된 뿔을 가진 사슴은 벌써 멸종되고 몸에 좋다는 사향을 가진 사향도 멸종 위기다.

올무는 암컷 수컷 새끼 가리지 않는다

배에 사향이 있는 사향노루 수컷은 짝짓기 철이 되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사향주머니에서 냄새를 풍긴다. 사향이 돈이 되면서 너도나도 올무를 놓고 사향노루를 잡기 시작했다. 올무엔 사향노루 수컷만 죽는 것이 아니다. 암컷도 새끼도 가리지 않고 모두 잡혀 죽는다. 지나가는 모든 야생동물이 올무에 걸려 죽는 것이다. 특효약이라고 알려져 사향 하나에 소 두 마리 값을 쳐줄 때 우리나라 깊은 산 어디라도 사람 발길이 안 닿는 곳이 없다.

사향노루가 배에 붙은 사향 때문에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입으로 물어 뜯으려고 해도 입이 배에 닿지 않는다. 인간에게 사향은 바로 욕심이 아닐까?

사람의 아랫도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심 때문에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도 박목월의 목마른 사슴도 남한 땅에 살지 못하고 있다.

/정대수(함안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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