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늦여름 밤의 까랭이

비 내린 오후, 늪에는 습기가 가득하다. 빈 배에도 물과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추억의 한 장면이다. 메기가 하품하면 비가 온다고 하고,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한다. 장맛비에 마을이 침수되어 주민들이 불편한 시대가 있었다. 일부 마을은 아직도 산길을 이용하지 않으면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는 힘들다. 지금은 이 작은 늪배(장대배)가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이익은 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소목마을의 싱싱하고 깨끗한 물고기들을 사러 찾아온다.

보호 지역이 되고 나서 물고기의 가치가 훨씬 높아진 것이다. 오늘 저녁은 이 마을에서 우포늪을 찾은 손님들과 붕어찜으로 식사하고 둑길을 걸으니 습기가 많아서인지 어젯밤보다 반딧불이가 훨씬 많아졌다.(9월 29일자 생태일기에서)

   
 

지금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지고 밤 기온이 낮아지면서 반딧불이도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 9월 한 달은 우포늪의 밤길을 걸으면서 반딧불이를 만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었다. 매일 밤 늦반딧불이의 발생 시간에 맞추어 첫사랑의 추억처럼 풀숲을 바라보며 숨죽여 기다린다. 정확하게 7시 8분이 되면 수컷 한 마리가 풀숲에서 쏘옥 올라온다. 속으로 야아!! 하면서 어둠 속에서 눈빛을 발하며 자유비행을 하는 그를 따라 조심조심 따라간다. 어떤 때는 뒤따르는 나를 향해 갑자기 방향을 돌려 낮게 비행하면서 어깨 너머로 휙 지나버리기도 한다.

마치 낯선 남자를 보고 경계하는 여인처럼…. 이 녀석의 낮은 비행이 신호라도 되는 듯이 풀숲 곳곳에서 춤추듯 하얀 물체들이 암컷을 찾아 일제히 비행하기 시작한다. 아아!! 드디어 우포늪의 밤은 미루나무 가지의 잎처럼, 까랭이(반딧불이-개똥벌레의 방언)들이 바람 춤을 추면서 별과 달을 희롱한다. 별과 달은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지만 눈별(풀별-반딧불이)은 눈부신 모습으로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비행하면서 사랑할 여인을 찾아 곡예비행을 하는 것이다. 춤추듯 사뿐히 곱게 말이다. 나무 잎에서 때로는 풀섶에서 눈부신 은빛을 반짝이며 기다리는 암컷을 향해 비행접시가 앉듯 살포시 다가가 교접한다.

필자는 이 순간을 훔쳐보며서 오늘 저녁에 만나는 그들의 숫자를 세어간다. 하나 둘 셋… 어느덧 200, 300을 셀 즈음에 까랭이들은 일제히 발생한 풀숲으로 사라진다. 이 시각이 저녁 8시 20분, 아아!! 오늘도 이들의 자연스러운 집단적 사랑 행위가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별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 된다.

늦여름밤 늪가의 자연은 방울벌레와 귀뚜라미 등의 풀벌레 소리들이 깊은 밤을 재촉하고, 간혹 울부짖는 야생동물들의 소리와 소쩍새, 쏙독새의 규칙적 신호 행위도 따지고 보면 먼 옛날 인간의 원초적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간혹 배고픈 들개들과 상위포식자인 삵의 밤 사냥도, 밤길에 만나는 쇠살모사와 족제비, 너구리 등도 먹이사슬의 질서 아래 먹이다툼보다 협력적 관계로 살아가는듯하다.

그들은 자연에서 스스로 일탈한 인간의 침입에 더 예민해 하며 상호위험 신호를 교호하는 것이 아닐까.

/이인식(우포늪따오기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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