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은 현실정치 불신느낀 민심의 표현...정의 위한 분노 현명한 판단으로 투표를

10여 년 전, 부산에서 연극 연출하는 친구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라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10·26 사건을 작품으로 제작, 기획한 적이 있다. 연극 '물이여! 불이여! 바람이여!'는 시대의 비극을 무속(巫俗)의 세계를 통해 우연과 필연, 인과응보의 업(業)으로 엮어 민족정기를 위한 정화와 화해를 시도한 작품이었다.

연극을 보면서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발생한 사건이 '내란목적 살인죄로 대통령을 죽인 패륜아', '유신독재를 종식한 민주혁명 투사'라는 대립적 평가를 받는 '경계인 김재규'를 먼 훗날 역사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지식이 짧은 386세대였던 사내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로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를 연상했다.

"최선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차선을 투표하는 것도 아닌,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하려 한다."

그 당시, 최루탄 내음이 난무하던 80년대 초 대학교정에서 학창시절을 보낸지라 정치에도 무관심할 수 없어 선거유세 현장을 자주 다녔었는데, 그때 야외 합동연설회를 경청하다 들은 한 시민의 자조적인 말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란 게 가슴이 무겁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프랑스혁명의 불길이 시작되었던 1789년 7월 14일. 국왕 루이 16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쓴 그날 일기에는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뜻의 '리앵(Rien·영어 Nothing)'이라는 한 단어만 기록되었다고 한다. 몇 년 후, 파리 혁명광장 단두대에서 자신의 목이 잘린다는 것도 모른 최고 권력은 소통 부재의 종결자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누군가가 본분을 이탈할 때, 민중의 항거는 노도처럼 일어나 세상을 바꾸었다. 최근 욕망, 야망의 정치로 감동이 없는 한나라당, 민주당 등 기성 정당의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느낀 민심이 '안철수 신드롬'으로 나타나 대통령의 딸 박근혜의 대세론을 뒤집었다. 불신, 불만, 불안이라는 '3불 시대'로 표현되는 국민에게 소통, 공감, 배려, 양보, 헌신 등이 안풍(安風)을 대변하는 키워드란다. 그런데도 위정자들은 바람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자기 성찰을 통한 창조적 혁신보다 안풍이 있니? 없니? 오래간다? 안 간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며 기득권 타령이나 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자업자득! 남을 탓하거나 욕할 필요가 없다.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이 오늘의 정치를 낳았다. 정책과 도덕성보다는 지연, 학연, 혈연으로 '묻지마 투표'를 한 유권자의 수준이 그 나라의 정치인 수준인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양극화와 복지논쟁, 존경받지 못하는 권력과 부(富), 부적절한 립서비스 수준인 공정사회, 그리고 남북, 좌우, 빈부의 첨예한 대립 등을 극복할 '통합과 상생을 위한 리더십'을 찾아내어 지지하고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말자.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장 등 전국 재보궐선거가 유신 체제의 비극적 종말을 맞은 10월 26일에 있다. 이번 재보선 결과도 궁금하지만, 내년은 민족사에 중요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줄줄이다. 부조리한 현실, 정의를 위한 분노를 현명한 판단으로 결론 내어 실행하자. 공동체의 적을 향해 총구가 아니라 투표권으로 심판하자. 희망찬 무혈 시민혁명을 위해선 진정한 야수의 심장이 필요하다! 투표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 야수의 심정으로 투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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