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사'는 역사학에서도 신생 영역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체 역사를 포괄하기엔 내용이 지엽적이어서다. 따라서 아직 역사학계에서 구술만으로 전체 역사를 인증한 예는 극히 드물다. '구술사'는 2000년대 초반에서야 국내 역사학계에 조금 꽃을 피웠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역사연구사조인 '문화사','미시사'의 증명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시사' 가운데서도 '지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연구방법으로 각광받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노무현 정부 들어 가속화 된 과거사 청산과정에서였다. 역사는 그 속성상 과거 시대 권력자 입장에서 기록되었기에 민중의 역사 기록은 빈약할대로 빈약했다.

그래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청산위원회' 같은 과거 국가의 과오를 기록해야 하는 조직은 결국, 국가중심적인 1차 사료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과거 역사를 재구성해야만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구술'은 전체 역사 서술 작업에서 '1차 사료'를 보완하는 보조 역할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지난 22일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있었던 마산연극사 정리 과정에서 한하균 선생 '구술 채록' 작업은 그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한하균 선생이 구술하고자 한 1960∼80년대는 멀지 않은 과거였을 뿐만 아니라,

마산연극사를 입증할 1차 사료, 즉, 팸플릿이나 공연 정보 문건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시기다. 이는 지난달 극단 마산 이상용 대표가 출간한 에세이집 <내 인생은 연극이다>에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선생이 증언한 시기는 한하균 선생 이외에도 증언 대상(이상용, 이종일 등)이 많다. 그런데도 마산연극협회는 한하균 선생의 구술에 의존해 1960년대부터 80년대 마산연극사 진술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따라서 마산연극협회의 마산연극사 출판 작업 1차 목표는 한하균 선생의 구술이 아닌 당시 팸플릿과 신문 보도내용 등을 기초로 한 '1차 사료'의 종합 정리다.

그 이후 한하균 선생의 구술을 통한 감수가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연구방법론적으로 아직 구술로 모든 마산연극사를 기록한다는 생각은 시기상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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