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새박덩굴 이야기
야생초와 숲 해설에 관심을 갖고부터 내 집 드나들듯 누비고 다니던 경남수목원을 찾았습니다. 나무 한 그루 옮겨간 자리까지 기억이 날 정도로 생생한 길입니다. 사철나무 울타리에 조랑조랑 매달린 새박덩굴 무리를 보고 함성을 지르면 신기해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올해도 그 자리에 여전히 새박덩굴이 줄줄이 열려서 더 없이 반가웠습니다.
박과의 새박덩굴은 '새알모양의 박'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인데, 박주가리나 하수오의 딴이름으로도 같이 불려서 많이 헷갈리기 쉽습니다. 사전에는 '박주가리·하수오의 다른 이름'이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새박덩굴의 이름 매김이 난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감에 엄연히 '새박덩굴'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박주가리나 하수오는 본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름에 하늘타리 잎처럼 무성한 덩굴을 지었다가 별모양의 작고 하얀 꽃이 핀 자리에 새알보다 작은 초록색 열매가 조랑조랑 달려서 가을이 되면 회백색 박의 색깔로 익습니다. 산외나 돌외·뚜껑덩굴 등과 같이 덩굴져 작은 열매들을 다는 식물입니다.
열매 안에는 수 백 개의 까만 씨가 가득 있는데 겨울나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됩니다. 겨울에 덤불이나 울타리에 참새나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떼 지어 노는 큰 이유가 바로 여름에 덤불졌던 덩굴성 식물의 씨앗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해살이 덩굴풀인 이 새박덩굴은 주로 민가 근처 울타리에 잘 자라지만 그리 흔한 식물은 아닙니다. 특정 지역에서 간혹 보이지만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풀이 아니라 다니다가 만나면 작고 앙증맞은 열매 앞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데요. 덩굴이나 전초는 약용에 사용했다는 흔적이 별로 없으나 그 뿌리는 관절염·사지마비·근육경련에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후염·결막염·유선염 등의 종기에 소염제로 쓰기도 한답니다.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쉼 없이 걷다보면 마음이 정돈되고 얼크러졌던 생각도 정리가 되며 여유를 찾게 됩니다. 풀잎에 내리는 빛살이 고운 이 가을날에 수목원 산책길을 돌며 한나절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루한 더위 끝에 불어주는 가을바람이 더 감사한 이유도 이 느림의 시간이 가져다 준 선물이겠지요.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