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미술전시 앞둔 4학년 학생들 "말도 안되는 소리"

지난 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추계예술대학 등을 '부실대학'으로 평가했다. 이에 지난 20일 예술대학학생연합은 "예술인은 고용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예술대 교육의 질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예술인복지법' 처리가 유보된 상태에서 과연 예술활동을 취업 여부로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졸업 미술전시(이하 졸전)를 얼마 두지 않은 4학년 학생들의 마음은 뒤숭숭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선 그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졸전에 매진하고 있는 4학년 학생들의 미래를 들여다본다.

#1. 대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막연한 것이었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다. 군대에 가기 전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용접을 하는 선배가 있었다. 선배의 꿈은 작가였다. 얼마나 작업하는 것이 좋았으면 감전 위험을 무릅쓸 정도일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제대 후 학교에 복학했다.

   
 

그 선배의 소식이 궁금했다. 놀랍게도 선배는 작가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며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서 돈벌이가 시원찮은 작가의 길은 일찍이 포기했다고. 나도 지금은 디자인 학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롯이 작가만을 위해서 작업에 매진할 수는 없다. 학비도 겨우 내는 실정이다. 동기들을 보면 상황은 매한가지다. 미술치료사를 비롯해 방과 후 교사, 캐릭터디자이너, 컬러리스트 등 쪽으로 일찌감치 무게를 둔다. 현실이 이러니 나도 뭐 어쩔 수 없다.

#2. 두렵다. 졸전이 끝나면 곧 졸업이다. 계속 학생이고 싶다. 미술 전공이 아닌 다른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너희 과는 취업하려면 뭘 준비해야 해? 소위 말하는 스펙같은 거 있잖아." 스펙이라…. 학점, 자격증, 토익 등의 취업 조건을 말해보라고 하니 딱히 할 말은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바라는 현실이 싫다. 우리는 졸전이 다다. '4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졸전이다. 포트폴리오와 공모전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요즘 미술(Fine Art)의 가능성을 잘 모르겠다.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선배, 동기들이 많아서다. 졸전을 준비하면서도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대학원을 진학할까?', '이왕이면 교육대학원?', '아니면 대부분이 그렇듯 아동미술이나 입시학원?' 잘 모르겠다. 다른 과 친구한테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그래도 넌 기술이 있잖아. 난 기술이 없어 큰일이야"라는 말이 돌아온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황스럽다.

#3. 다들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뭘 먹고살 건데'부터 시작해 '장가나 갈 수 있겠나'까지. 난 괜찮은데 왜 다들 걱정만 앞설까 모르겠다. 아들, 딸 놓고 편안한 직장에 안정적으로 사는 것, 물론 좋다. 하지만, 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을 낳고 싶다. 올해 초 학과 내 동아리를 만들었다. 매주 하루씩 만나 공모전 준비를 비롯해 작품에 대한 비판, 과제에 대한 논의 등을 한다. 원래는 3학년 후배가 이끌어야 하지만 아직 누가 할지 불투명하다. 작년에는 다른 학교랑 교류전을 시작했다. 순전히 다른 학교 친구들의 작업이 궁금해서였다. 올해는 25명 학생이 참여해 30여 작품을 내놓았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내가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졸전을 앞두고 작가가 되고자 유학을 결심했다. 국내보다는 지역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외국을 선택했다. 내년 졸업을 하고 한동안 외국어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다. 때론 예술인 처우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졸전을 준비 중인 4학년 학생 대부분은 학원 강사, 창작활동, 대학원 진학을 꿈꿨다.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정규직을 목표로 졸전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그런 직장을 찾는 것 자체가 예술 분야 쪽에서는 힘이 들기도 하다. 미술을 전공하는 자에게 진정한 취업은 무엇일까. 직장건강보험 가입이 어려운 예술가가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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