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근대 건축을 찾아서] (1) 마산합포구 장군동 삼광청주 주조장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의 고층 건물. 이 가운데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세워진 공장, 철도, 우체국 등 근대 건축물이 그 예다. 낡아서 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개발을 내세울 땐 곧바로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치욕스러운 역사 잔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연유로 근대건축물은 점점 도심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창원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과거 주조장 건물인 삼광청주 주조장 역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지역민들은 '술의 도시' 마산의 마지막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근대건축물 보존 운동은 군산, 목포 등 타 지역에서는 이미 진행 중이다. 근대 건축물을 보존·활용해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근대건축물이 지역과 지역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개항 후 근대건축물이 많이 세워졌던 창원(옛 마산·창원·진해)에서 그 자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후 근대건축물을 보존하는 국내외 유사 사례를 살펴보고 과거 역사와의 단절이 아닌 연결 지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창원시 근대건축물을 묻다 = 우선 창원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을 살펴보기 위해 관련 전문가 5명(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 박영주 지역사 연구가, 신삼호 건축사, 유장근 경남대 교수, 허정도 창원대 초빙교수·가나다 순)으로 자문단을 꾸렸다. 지난달 19일 자문단 회의를 통해 삼광청주 주조장을 포함해 보존이 시급하거나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건축물 10곳을 함께 둘러보고 이를 알리기로 했다. 자문단은 근대 건축물이 보존 가치가 충분한데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삼광청주 공장의 역사는 = 가장 먼저 지난 9일 오후 취재진, 자문단, 중앙동 주민센터 관계자, 지역 주민 10여 명이 삼광청주 공장(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3가 13-1)를 찾았다. 언제 누가 만든 것일까. 1909년 일본인 사업가 엔도(遠藤豊吉)가 현 마산 장군동 일대에 청주(일본말로 '사케') 공장을 세웠다. 마산은 물 좋고 공기가 좋았고, 인근에 김해평야가 있어 쌀을 구하기 쉬웠다. 술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는 청주 공장을 세우고, 이름을 지시마엔 주조장(千島園) 이라 했다. 지시마엔 주조장은 한 해에 500석(약 9만 리터)에 달하는 청주를 생산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마산에서는 한때 17개 공장에서 최대 2만 석에 달하는 청주를 생산했다.

삼광청주 주조장엔 일부 주민이 아직 살고 있고, 외부는 대체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1945년 광복이 되자, 공장은 술 도매상을 하던 손삼권 씨에게 넘어갔다. 손삼권 씨는 삼광청주 주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마산의 청주 산업은 날로 쇠락했다. 광복이후 극심한 식량난으로 쌀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전쟁이 터졌고, 업자들 간의 분쟁까지 겹치면서 60년대에 이르러서는 7개의 주조장만이 남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운영되는 업체는 두어 곳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삼광청주 공장을 운영하던 손삼권 씨는 58년에 칠성주조장(현 신흥동 삼강청주 공장)을 인수해 사세를 오히려 넓혔다. 그러나 '사람 먹을 쌀도 없는데, 쌀로 술이나 만든다'는 박정희 정권의 인식이 주조장의 명줄을 죄기 시작했다. 생산량은 줄어갔으며, 급기야 1973년 박정희 정권은 군소주류업체의 통폐합을 시행했다. 결국 두 주조장은 1974년 문을 닫았다.

◇쌍둥이 건물 = 목조로 된 2층 건물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쪽 장군동, 아래쪽 신흥동에 쌍둥이처럼 2개가 서있다. 양쪽 부지를 합하면 2000평가량 된다. 예상했던 것보다 큰 규모다.

   
 
 
삼광청주 공장(좌측 상단 네모난 적색 굴뚝)과 삼강청주 공장(우측 상단 둥근 적색 굴뚝). /김구연 기자
 

삼광청주 약도. /서동진 기자

일단 외관상 차이는 굴뚝 모양이다. 장군동 주조장은 사각형의 짧은 굴뚝이지만, 신흥동은 기다랗고 둥근 굴뚝에 흰 타일을 붙여 문양까지 만들어 놨다. 현장에서 전문가들은 장군동 쪽 건물이 먼저 세워졌고, 이후에 신흥동에 더 규모를 넓혀 세련된 모양으로 주조장을 세운 것으로 추정했다. 사정 토지대장 등 서류를 확인해보니 신흥동 쪽 건물은 애초엔 칠성양조장이었는데, 삼광청주 주인이 인수했다.

◇컴컴하고 천장이 높은 주조장, 그 이유는 = 아래 신흥동 공장에 들어서자 높은 천장이 인상적이었다. 삼광청주 공장 사장이었던 고 손삼권 씨의 큰아들 손정길 씨는 큰 술통 높이가 2m 50㎝가량 돼서 천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술 제조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술을 저었을 정도다. 또, 건물이 전체적으로 컴컴한 것도 술 제조 과정에서 빛이 들지 않게 만들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공장은 단층 건물임에도 지붕이 상당히 높다. 술독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김구연 기자

신흥동 공장 목조 벽은 투박한 나뭇결이 그대로 남아있다. '스기'(적삼목)를 썼다. 병해충에 강하고, 오래 쓸 수 있다고 해서 나무를 살짝 그을렸다.

신흥동, 장군동 위아래 건물 다 목조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를 얹고 굴뚝까지 그대로 있어서 전과 다름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그간 변화해온 궤적이 켜켜이 묻어났다. 건물을 증축해 칸칸이 방을 만들어 놓아, 떠난 이들이 남겨둔 세간이 곳곳에 보였다. 한때 위 아래 공장 합해 40가구가 살았다던 집은 이제 거의 다 비었다.

삼광청주 내 거대한 솥. 이 솥은 술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했으리라 추정된다. 공장에는 이런 거대한 솥이 수십 개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 몇 개나 남아 있을까? /김구연 기자

◇주도(酒都) 마산은 기억 속에 = 현재 장군동 공장 굴뚝에는 공장이름 '천도원'으로 추정되는 세 글자가 지워진 채 남아있다. 이제 그런 흔적마저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건물이 애초 공장을 운영했던 이들의 손을 떠나 팔리면서 곧 헐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꼬들밥'(고두밥·아주 되게 지어져 고들고들한 밥)을 물과 섞어 만드는 술이 익는 공장 모습을 반추하는 것은 오로지 추억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해질 모양이다.

삼광청주 주조장 인근에서 살고 있는 최춘파(67·마산중앙동 으뜸마을추진위원장) 씨는 "근대 건축물을 일본 잔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후손들이 보고 사실을 알아야지. 헐어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다. 유산을 잘 활용해 관광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문위원들이 인근 건물 옥상에서 삼광청주 공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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