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43) 나팔꽃에서 일본을 찾는다

지난 여름방학 가족과 함께 일본 신사 다이자후 텐만궁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다. 신사 앞 가게가 참 많았는데 그 중 한 가게에서 나팔꽃을 예쁘게 기르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나팔꽃이 자주 나오고 일본 백중날 귀하고 고마운 분에게 선물을 보내는 엽서에도 나팔꽃이 그려져 있다. 왜 이렇게 일본 사람들은 나팔꽃을 좋아하는 걸까? 자료를 찾아도 시원한 해설이 없다.

"나팔꽃이 예쁜 꽃을 피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전날 밤의 어둠과 차가움이다." 새 일본 총리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가 민주당 당대표 경선 연설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총리로 뽑혀야 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 왜 하필 나팔꽃을 비유해 이야기했을까? 소나무도 국화꽃도 벚꽃도 아닌 나팔꽃일까? 나팔꽃이 올 여름 계속 궁금해진다.

일본 후쿠오카 다이자후 텐만궁 앞 가게에 놓인 나팔꽃. 일본인은 벚꽃과 함께 나팔꽃을 유달리 좋아한다. /정대수

◇어두운 밤을 지나야만 피는 꽃 = 노다 총리는 밤의 어둠과 차가움이 나팔꽃을 예쁘게 피운다고 했다.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나팔꽃이 새벽에 언제 피는지 밤새 불을 켜놓고 기다리며 실험을 했더니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나팔꽃은 깜깜한 밤이 지나야만 꽃이 피기 때문이다. 나팔꽃은 하지(6월 22일)가 지나 밤이 길어지고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야만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일본 백중(오추겐)에 고마운 분에게 선물을 하는데 대표적인 여름꽃 나팔꽃이 그려진 연하장에 편지를 쓴다고 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 나팔꽃을 영어로 Morning Glory(아침의 영광), 일본 말로 아사가오(朝顔·아침 얼굴)라고 한다. 영어와 일본어만 봐도 진짜 아침 꽃이 맞는가 보다. 나팔꽃은 새벽에 피었다가 아침 해가 뜨면 서서히 꽃잎을 닫기 시작해 점심 무렵이면 완전히 닫는다. 해 뜨기 전에는 이슬이 많아서 곤충들이 꽃가루받이를 하러 다니기도 어려울텐데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려면 햇살 좋은 한낮에 꽃을 피워야 할텐데 무슨 배짱일까? 나팔꽃이 배짱좋게 일찍 문을 닫는 것은 바로 자가수정을 하기 때문이란다. 곤충이나 바람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햇빛을 받아 꽃잎이 닫히면 꽃 안에 있던 암술과 수술이 저절로 자가 수정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나팔꽃이 엄청난 씨앗을 달고 있는 걸 보면 아침에 해 뜨고 문 닫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가 보다.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 나팔꽃은 지지대나 다른 식물을 감지 않으면 하늘을 향해 올라갈 수 없다.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지만 막상 아침 햇살을 받으면 꽃을 오므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해뜨면 지기 시작하는 꽃, 하루만에 지는 꽃이라 덧없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꽃도 사랑도 영원하지 않기에 애절하고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팔꽃처럼 하루를 살아도 전부를 다 걸라는 삶의 교훈을 찾는 사람도 있다.

나팔꽃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새벽에 피었다가 해뜨면 지기 시작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일본 사람들이 나팔꽃을 좋아하는 문화적 이유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계명대 유옥희 교수의 <하이쿠와 일본적 감성>이라는 책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치며 재미나게 읽었다.

일본 사람들은 잦은 태풍과 화산폭발과 지진에 언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잠재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람은 잠잘 때 편안하게 죽기를 바라는데 일본 사람은 벚꽃 비 내리는 날 다다미 방에 앉아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죽고 싶어하는가보다.

◇언제 죽어도 어쩔 수 없다 = 일본 사람들은 쓰나미나 지진과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로 워낙 많이 죽어 나가서 사람이나 집이나 아침에 나팔꽃에 앉은 이슬 같은 존재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 순간의 변화에 민감하게 감성적으로 받아들인다.

1833년께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나팔꽃이 그려진 '가츠시카 호쿠사이'. 프랑스 기메국립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나팔꽃에 앉은 아침이슬 = 일본은 언제라도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과 태풍이 와서 죽어도 어쩔 수 없기에 머리로 생각하는 이성보다는 가슴과 오감으로 느끼는 감성에 민감해지기 쉽다. 그래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짧게 피었다가 지고 마는 풀과 꽃이 보인다. 벚꽃과 은방울꽃 나팔꽃같이 피었다가 금방 지는 꽃을 좋아하며 순간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느낀다.

우리 선비들이 돌과 소나무처럼 오랫동안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를 중요하게 여긴 반면 일본은 이슬이 내려앉은 나팔꽃을 소중하게 바라본 것이다.

/정대수(함안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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