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께 올려 보이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은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 그나마 수확의 계절 가을이 일 년 중 가장 먹거리가 푸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 데서 유래했다.

특별한 제철 음식이 없을 만큼 사시사철 먹을 것이 풍성한 요즘이야 추석이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나고 조상께 차례를 지내는 것에 더 의미를 두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외칠 곳이 있을 듯하다. 바로 전통시장. 대형상점의 공격 속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전통시장이지만 명절 즈음엔 말 그대로 대목을 맞았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6일 오전 마산 어시장과 부림시장을 찾았다. '봄볕에 딸 내보내고 가을볕에 며느리 내보낸다'더니 바람은 선선해도 햇살은 강렬했다. 하지만, 시장에는 제수용 과일과 생선, 나물, 햇곡류들이 좌판마다 풍성하게 놓여 있고, 상인들의 표정에도 기대가 넘친다. 모처럼 이리저리 사람들을 피해가며 다니는 시장골목이 정겹다.

   
 

아무래도 가을은 '열매의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익는 계절이다.

"조상님께 올해 처음 수확한 햅쌀을 올려야제. 옛날에는 흰쌀을 고봉 가득 담아 놓으면 안 먹어도 배불렀는데. 흰쌀이 요즘 웰빙 때문에 대접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힘쓰는 데는 흰밥 만한 게 있더나. 올해 처음 수확한 햅쌀 사가이소."

알록달록 제 빛을 뽐내는 과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과와 배를 비롯해 복숭아, 수박, 귤까지 대표 과일들이 총망라됐다.

"요즘처럼 과일이 맛있을 때가 없죠. 단맛과 신맛이 적당히 어우러져 과일만 제대로 먹어도 몸보신 하는 겁니더. 차례상에 올리는 것은 이렇게 껍질이 팽팽하고 묵직한 것이 좋습니더. 크기도 어른 주먹만 한 게 차례상에 올리기에 보기 좋다 아입니꺼? 상처 없이 먹기 좋게 생긴 것으로 사가고 집에서 먹을 거는 알은 조금 작아도 맛있는 걸로 골라줄게요. 지금 사도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괜찮아요. 사과는 손가락으로 튕겨 보았을 때 맑은소리가 나는 것이 좋아요. 껍질 보이소. 탱탱하니 탄력 있어 보이죠? 이런 사과가 맛난 거라. 근데 사과는 다른 과일하고 같이 보관하면 다른 과일을 쉽게 익어버리게 하니까 사과만 따로 봉지에 넣어 보관해야 돼요. 차례상에 올리는 것은 배는 하나에 4000원에서 6000원 정도 합니더. 근데 3개 1만 원에 줄게요. 홍옥은 2000원부터 골라 보소."

'백성의 물고기' 민어, 2만 원에 7마리면 충분 

추석을 맞아 지난 6일 마산 어시장은 과일과 생선 등 제수용품들이 풍년을 이루고, 대목을 맞아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백성의 물고기'란 뜻이 있는 민어는 예로부터 남녀노소, 귀천 구별 없이 모두가 즐겼던 생선이다. 그래서 선조는 아무리 가난하다 하더라도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민어만은 꼭 올렸다는데 추석을 앞두고 수산 코너에는 어김없이 민어 조기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0cm는 족히 돼 보이는 민어가 2만 원이면 7마리 정도로 차례를 지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민어는 흰 살 생선으로 소화 흡수가 빨라 어린이들의 발육촉진에 좋을 뿐만 아니라 기력이 쇠약한 노인이나 큰 병을 치른 환자들의 체력 회복에도 탁월한 효과를 낸다고 하니 환절기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올해는 고기가 잘 안 잡혔어요. 그래도 대목이라 가격이 많이 내렸습니더."

차례 음식과 별도로 이 계절에 좋은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가을철 보양식은 견과류다. 견과류에는 단백질과 식물성 불포화 지방이 어느 식품보다 많다. 차례상에도 올라가는 밤과 수정과에 띄우는 잣 등은 명절 준비와는 별도로 챙겨보는 것이 좋겠다.

밤은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고 잣은 비타민B 군이 풍부하고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빈혈에 좋다. 하지만, 인이 많고 칼슘이 적은 산성식품이라 칼슘 함량이 높은 우유 등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단다. 혈액을 맑게 하는 식품인 아몬드와 두뇌 건강과 피부에 좋은 호두 등도 깊어가는 가을 밤, 주전부리로 괜찮을 듯하다.

깎아달라는 손님들의 이야기에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덤을 더 주면서 흥정을 하고, '더 맛난 거 내줄게' 하며 창고로 부지런히 뛰어가는 상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어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