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의 영국에서 본 한국] (10) 행복한 삶의 비결, 당당하고 느리게 살기

누구나 그렇듯 가장 힘들었던 건 당연히 언어문제였다. 물론 아주 간단한 내용이야 서로 얼굴 마주보며 몸짓 손짓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른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 말 외에 표정, 제스처, 눈빛 등으로 나누는 소통 방식)이 실제 소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몸소 검증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격식을 갖춰 말해야 하거나 전화로 대화할 때는 그 어려움이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낯설기 그지없는 인도 억양(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기업의 상당수도 콜센터는 인도에 두고 운용한다)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물론 상대방 또한 어설프기 그지없는 '콩글리시' 때문에 무진 애를 먹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영국은 모든 것이 한국보다 느리다.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조차 느리다. 한국사람이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자꾸 위축되는 느낌에, 소개받은 한 영국인 친구와 진지하게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어느 정도 알아듣긴 하겠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 친구 왈, 한국 사람들의 보편적 현상이란다. 그리고 다들 10년 넘게 영어 공부를 했으면서도 말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타인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 본인이 사용한 문장에 문법상 틀린 표현이 없는지 너무 생각하고 말하려 하다 보니 우물쭈물하다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학생들을 무수히 봤다는 거다. 남의 나라 말에 능숙하지 못한 건 당연한 현상이고 본국의 사람들도 문법상 실수를 수도 없이 하니 자신 있게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그 친구의 배려 덕분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조금씩이나마 말문을 틀 수 있었다.

영국 생활에서 또 하나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속도'였다. 모든 게 느려도 너무 느렸다. 아니 '느려 터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갑갑했다. 한마디로 한국이란 사회가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린다면 거긴 아무리 많이 줘도 40 이상이 안 될 만큼 느렸다.

처음 도착해 집을 구할 때부터 그랬다.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 놓은 후보지들을 골라 예약을 할라치면 최소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이사한 뒤 전화를 신청하니 '14 working days', 즉 2주 이상을 기다리란다. 그렇게 전화가 설치된 뒤 인터넷 개통 신청을 하니 그것도 2주일 걸린단다. 위에 언급한 친구에게 대체 왜 이리 모든 게 느리냐고 물었더니 그게 바로 영국이란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 입장에서 아주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흐르며 내가 그 사회에 동화된 건지 원래 그게 정상인 건지 차츰 내 삶의 속도도 느려졌다. 그리고 그 느림이 빠른 것의 반대가 아니라 여유라는 것임을 알게 됐고, 그 여유는 미리미리 예측하고 준비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예측 불가능함'을 '역동적'이라거나 그것을 영역한 '다이내믹'이란 것으로 포장해 왔던 사람의 입장에서 그 대책 없는 '스릴'에 나와 가족의 인생을 맡긴 것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하는 반성을 해 보기도 했다. 준비하고 대비하면 서둘지 않아도 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귀국한 지 벌써 8개월여, 아직까진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관심 두지도 않고 매사를 서둘지도 않으며 살고 있기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새삼 우리네 삶의 방식이 그곳의 그것에 비해 못한 것은 아니다 싶은 증거들도 수없이 발견하고 있다.

하지만 무슨 옷을 입어도 내가 만족하기보다 남이 어떻게 볼까 먼저 생각하게 될 때, 무슨 말을 하거나 주장을 펼 때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나치게 염려하는 자기검열에 시달릴 때, 미리 준비하지 않아 5분 차이로 기차 놓치고선 가장 빠른 다음 차표 달라며 역무원에게 닦달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동네가 떠오르곤 한다.

지난 반세기 우리가 이룩한 기적은 놀랍고도 위대했다. 손톱만큼의 이의도 없음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도 모르게 가지게 된 습성, 세계 최초나 최대, 그것도 모자라면 동양 최고나 최초 같이 스스로의 만족보다 남의 그것에 빗대 뭐든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한 과시용 허세는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더불어 전례 없이 빠른 경제성장 속에 갖게 된 또 하나의 버릇 '빨리빨리'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발전을 비롯해 시민의식의 성숙 등에서 보듯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빨리 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뭐든지 곧 된다는, 할 수 있다는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성과에 짜증내며 뭔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하루하루, 그 속엔 행복이란 게 숨 쉴 공간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연재를 마치며…

우연한 기회에 행운을 얻어 길진 않지만 몇 년의 세월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경남도민일보에 감사드린다.

필자에게 영국 생활은 한국에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해 그 대가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소중하다 여기기에 후회는 없다.

   
 

한 가지 꼭 밝히고 싶은 건 그 사회가 우리보다 월등하며 우린 그보다 훨씬 뒤떨어졌단 의도로 한 연재는 아니었던 사실이다. 세상에 완벽한 곳이 어디 있으랴. '유토피아'(Utopia)의 원래 의미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의미의 'Not place'임을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을 테다. 단지, 그 사회가 가진 장점만 언급했을 뿐이다. 어디서든 배울 건 배우고 빼먹을 건 빼먹자는 의도, 그게 전부였을 뿐이다.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끝> /김갑수(방송인·영국 셰필드대 정치학 석사)

<김갑수의 영국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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