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바랭이 이야기

여름방학이 끝난 개학날. 방학 동안 학교숲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잘 자라지 않아 걱정했던 능소화 묘목은 꽃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줄기가 제법 올라왔고, 3년째 키우는 제비콩은 학교 건물 옥상까지 줄기를 올렸다. 또 화단 곳곳에는 아무렇게나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개학식을 마치고 아이들과 방학과제를 검사하고, 방학 동안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도 교실에 적응해야 하기에 책 공부는 내일로 미룬다. "얘들아. 밖에 나갈래?" "선생님 최고!" "쌤. 짱이에요!" 책상에 앉아 있기 따분한 아이들은 저마다 환호를 지른다. 방학이라도 신선한 햇빛을 친구들과 함께 나눌 시간이 부족했던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잠시 후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준비한 목장갑을 하나씩 나눠주니 금방 우는 목소리로 애교를 떤다. "선생님 뭐예요? 무슨 일 해요? 하기 싫어요." 나는 그저 웃으며 다시 물어본다. "공부할래? 일 조금만 할래?" 아이들은 다 같이 대답한다 "일할래요."

가녀린 여성의 손을 닮은 바랭이. /박대현

어느 정도 잡초 제거를 끝내고 손가락처럼 생긴 풀꽃을 하나 뽑았다. 이삭 줄기 중 적당한 것을 하나를 떼어내고 나머지 이삭 줄기를 뒤집어 묶어 우산 모양을 만들었다. 우산처럼 접기, 펴기도 된다.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익숙하게 따라 만든다. "이 풀 이름이 뭘까?"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이름을 말한다. 손가락풀, 분수풀, 우산풀, 길죽이풀, 잡초풀까지 각양각색이다.

가녀린 여성의 손을 닮은 이 풀의 이름은 바랭이다. 하지만, 강아지풀처럼 친근한 이름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풀의 생김새는 아는데 이름을 모른다. 바랭이의 이름을 미국처럼 생김새를 본떠 손가락풀(Finger grass)같이 지었다면 강아지풀처럼 유명한 풀이 되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바랭이는 옆으로 자라며 줄기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 다른 잡초에 비해 쉽게 뽑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많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기어가며 자란다. 이삭 줄기 빼곡하게 씨앗을 만들어 번식에 유리하게 진화했다. 우리로 치자면 자식 많이 낳고 보험에 많이 가입해 놓는 것과 비슷하다. 저 흔한 바랭이도 자신 만의 생존 전략이 있었다. 바랭이나 인간이나 대자연 속에서는 그저 작은 생물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박대현(진동초교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