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란 어쩌면 다양한 상징체계들의 조합일는지 모른다. 우리 민족은 특별히 다양한 동물을 마치 사람을 대하듯 생각이 있고 정신이 있는 생명체로 여겨왔다.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에서부터 거북이 나오는 김해 가락국기의 수로신화 등. 문득 궁금해온다. 이렇듯 많은 동물의 등장은 우리민족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저자가 펴낸 <우리 문화의 상징세계>는 기존에 선보인 바 있는 민속상징 저서들-<한국인의 상징체계>(구미래 지음·교보문고) <한국문화 상징사전>(동아출판사)-이 12간지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33가지 동물을 다룬 다양성이 강점이다. 등장하는 동물은 개·개구리·거북·고양이·곰·기러기·까마귀·까치·꿩·노루·닭·당나귀·돼지·말·매·박쥐·뱀·부엉이·비둘기·사슴·소·양·여우·올빼미·용·원숭이·원앙·잉어·제비·쥐·토끼·학·호랑이 등. 책은 이들 동물을 통해 우리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습속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이를테면 외국인들이 ‘야만적이기 그지없다’고 말하는 보신탕문화도 알고 보면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것과 같은 예가 그것이다. <동국세시기> 등에 의하면 보신탕이라 일컬어지는 개장국 풍속은 6월과 연관이 있다. 6월은 농사일의 막바지 김매기가 시작되는 때여서 뜨거운 햇볕아래 김매기를 하면 지치고 기가 빠져 보충하는 음식으로 개장국을 먹은데서 유래됐다는 것.



각종 문화재를 비롯해 문방사우나 비석의 받침인 귀부 등에 등장하는 거북의 의미는· 거북모양을 형상화 하는 것이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구지가>에서 머리를 내밀라고 한 이유(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는 뭘까. 저자는 거북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신성한 동물이라 ‘머리를 내놓는다는 것은 신이 사람들에게 왕이 될 사람을 보내준다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풀이한다. 거북은 장수의 상징이자, 죽은이를 지켜주고(고구려의 사신도), 은혜를 갚으며, 지혜롭다(<토끼와 거북이> 등의 동물담)고 여겨진다.



우리민족과 가장 밀접한 곰이‘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부활의 상징’이라는 말도 흥미롭다. 곰은 우둔한 동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신성성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곰이 신적인 속성을 지녔다는 말은 문헌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곰을 부활의 존재로 본 것은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나 활동을 시작하는 생태적 특성덕분이고, 단군신화에서 보듯 곰이 여성으로 부활된 것은 재생산의 의미와 부합된다고 풀이했다.



까마귀가 불길한 새라는 속신은 옛날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원래 까마귀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삼족오(三足烏)’를 보듯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했다.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이야기에도 까마귀는 태양과 달을 상징했다. 반포조(反哺鳥)라 불리는 것을 보면 까마귀는 효자새이기도 하다.



<최고운전>이라는 최치원의 탄생설화를 보면 최치원의 아버지가 사람이 아니라 금돼지라는 얘기도 나온다. 최치원의 어머니가 매우 뛰어난 지모를 지녔는데 이를 탐한 금돼지가 어머니를 납치해 통정해서 낳은 아이가 최치원이라는 설이다. 돼지는 이처럼 재물과 복을 상징한다. 삼국시대 기록을 보면 돼지는 하늘에 바치는 신성한 제물(지금도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지내는 습속과 연관이 있어보인다)이자, 재산이며 복의 상징이었다.



이외에도 뱀이 재복을 주는 영생의 상징으로, 노루는 하늘의 뜻을 전하는 역할로, 개구리는 미래를 예언하는 존재로, 쥐는 인간에게 불과 물을 가져다 준 존재로, 잉어는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치는 상징으로, 용은 권력과 풍요를 가져다준 존재로, 박쥐는 복을 주고 자손을 많이 낳게하는 존재로 풀이된다.



책엔 수백, 수천년에 걸쳐 정착된 우리 문화의 정체를 알아가는 묘미가 녹아있다. 김종대 지음. 444쪽. 다른세상.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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