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의 영국에서 본 한국] (7) 공정사회로 가는 유일한 길, 교육

제법 나이 들어 시작한 유학생활은 가족이 있어 힘들지만 외롭지 않았다. 특히 아내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딸아이 덕분에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떠나기 전 걱정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 교육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겨우 만 5살밖에 안 된 아이가 낯선 환경은 물론 우리와 전혀 다른 교육 시스템과 학교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하루하루였다.

영국의 전형적인 초등학교 교실, 학생 30명을 절대 넘길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보조 교사가 함께 수업 진행을 한다.

도착해 집을 구하고 가장 먼저 근처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가까울뿐더러 동갑내기 한국 아이가 몇몇 있어 훨씬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기 중인데다 학생 수가 넘쳐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뒤 집으로 편지가 왔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원하는 학교에 빈자리가 없으니 조금 멀어도 다른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교육당국에서 내린 결정이 맘에 안 들 경우 학부모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었다. 이른바 '학교 배정에 대한 이의제기'(Appealing against a school place decision)가 바로 그것이었다. 내용인즉슨, 영국 학교법은 '통학구역'(catchment area, 걸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거리 정도) 내에 살고 있거나 형제자매 중 누군가 그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경우 우선 배정을 하지만 그 외엔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절차에 따라 이의제기를 했고 교육청이 청문회를 열어줬다.

편지 또한 정중했다. 사용하는 언어와 과정 모두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의제기할 '권리'가 있고 당국은 다시 심의할 '의무'가 있으며 입학을 불허한 해당 학교 교장을 '소환'해 해명하게 할 테니 일정 기간 중 편한 날짜를 지정해 주면 청문회를 소집하겠다는 식이었다.

정해진 날 정해진 장소에 가니 세 명의 중년 남녀와 해당 학교 교장, 그리고 교육청 관계자가 나와 있었다.

그 세 명은 결정을 내려 줄 일반 배심원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소환된 교장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는 걸 맹세하며 공정하게 판결하겠다는 선서였다.

그리고 절차에 따라 교장이 먼저 해명했다. 교육법에 어린 학생들의 학급 인원수가 30명을 초과할 경우 무조건 분반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교사 몇 명을 더 채용해야 하는 등 학교에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과하다는 논리였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주어졌다. 원래 지원한 학교가 집에서 불과 300~400m 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반해 새로 배정받은 학교는 2㎞가 넘어 아침마다 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 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 필자야 그렇다 치고 아내는 장롱 면허에 가까운 편이었고 차선과 운전석마저 우리와 반대라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과는 일주일 후 편지로 통보됐고, 안타깝게도 새로 배정받은 학교에 가야했다. 하지만 전혀 불쾌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충분히 존중받았고 나름 공감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들어가고 몇 주간 아이는 힘들어 했다. 외국인이라곤 혼자였기에 말도 안 통하는 데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도 오전 8시 50분부터 오후 3시 10분까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학교도, 교사도, 우리도 모두 하나가 되어 지속적인 소통을 했다. 아이가 힘들어 할 경우 부모가 신청하면 오직 우리 아이만을 위한 전담교사를 채용해 준다고 했다. 그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당연한 권리로 법에 보장된 것이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학교 가는 시간을 기다리며 아침 일찍 일어나 노래를 부르게 됐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몇 달 후 학교에서 통신문이 왔다. 놀랍게도 시민의식 수업을 위해 집에서 미리 토론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늘 만들기, 뛰어놀기, 읽기, 쓰기, 그리기만 하던 1학년 아이에게 '공정함'(fairness)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시켜 학교로 보내달란 것이었다.

고민 끝에 아이와 케이크를 비유로 얘길 했다. 열 명의 사람이 있는데 케이크는 단 하나, 똑같은 크기로 나눠주는 게 옳은 것이냐 물었고 아이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곤 답했다. 배고픈 사람과 덜 고픈 사람, 덩치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을 테니 거기에 맞춰 나눠야 한다고. 다시 물었다.

옮겨야 할 짐이 많은데 열 명이 똑같은 크기와 무게로 나눠 옮기면 옳은 것이냐고. 훨씬 수월하게 답했으니 힘 센 사람이 무거운 걸 들고 자기처럼 힘없는 사람이 가벼운 걸 드는 게 옳단다. 완벽한 정답이었다.

두어 달이 지난 후, 똑같은 숙제가 주어졌다. 이번엔 '공동체'(community)가 무엇인지 토론해 보내달란 내용이었다. 그런 식이었다. 대여섯 살 어린 시절, 가장 주안점을 두고 가르치는 건 수학이나 피아노, 컴퓨터가 아닌 바로 정의와 공정, 공동체 의식 같은 보편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이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세계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뼛속 깊이 각인시키고 있었다.

   
 

필자는 지금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시민교육'이란 과목을 교양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1,2학년들을 데리고 하던 얘길 대학생들과 하고 있다. 그나마 이 대학이 큰 결심을 하고 인문학 중심대학으로 가길 선포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엊그제 입만 열면 '공정'을 외치는 이 정부는 또 다시 법인세는 내리고 소득세는 올리는 이른바 부자감세안을 검토 중이라 발표했고 서울시장은 아이들 점심 그냥 줄 수 없다며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렸다. 대체 그들은 '공정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김갑수(방송인·영국 셰필드대학 정치학 석사)

<김갑수의 영국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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