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의 향기] 권영자 ㈜현대기업 회장

창원시 여성 CEO 1세대 대표 주자로 꼽히는 권영자(1945~2011) ㈜현대기업 회장이 지난 8월 1일 별세했다. 향년 67세, 사인은 뇌종양 수술 후유증이다.

1945년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신용'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를 신조로 삼았다. 1964년 마산성지여고를 졸업했고, 1994년 경남대 경영대학원 과정, 1997년 마산전문대 사무자동화과를 마쳤다. 1964~1970년 공무원을 하기도 했다. 현대기업 창업주인 남편 이상준 씨가 고인이 된 1991년부터 기업을 맡아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를 되살렸다. 자녀는 아들 이호철 씨와 딸 이영화 씨가 있다. 장지는 먼저 고인이 된 남편이 묻힌 창원시 공원묘지에 썼다.

고인이 된 권영자 (주)현대기업 대표이사. /현대기업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에 있는 현대기업은 엘리베이터 문 생산이 주력인 업체다. 고인이 대표이사직을 맡았을 때 회사 사정은 부도 직전이었다. 1967년 결혼하고 나서 계속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고인은 당장 무엇부터 시작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인은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직원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어머니는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약속하셨어요.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않겠다, 회사는 여러분 것이다, 함께 이 회사를 살려보자 하셨지요. 아들인 저도 처음에는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요."

아들 이호철 씨가 현대기업에 입사한 것은 1999년이다. 그것도 고인이 뇌종양 수술을 받고 건강이 나빠지자 직원들 권유로 입사했다. 고인은 철저하게 직원들 중심으로 회사를 꾸렸고 직원들은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기업은 지금 중국에 생산공장을 따로 둘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연히 회사 일을 잘 아는 분은 아니었어요. 회사 안에서는 직원들을 믿고 맡겼고, 회사 밖에서는 약속 잘 지키고 할 말은 하는 대표였지요. 밖에서는 여장부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여린 분이셨어요."

많은 사람은 고인을 여장부로 기억했다. 김성돈 경남은행 영업부장 기억에도 그랬다.

"1995년 영업부 과장 시절부터 알았어요. 한마디로 여장부지요. 말씀도 막힘 없었고 의사결정 과정도 시원했어요. 통이 크고 거래처 사람들에게도 잘했지요. 당시 창원공단에 여성 CEO로는 첫 세대일 텐데요. 언제나 할 말은 야무지게 하는 분이었어요."

고인이 '여장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모기업과 관계였다. 보통 모기업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협력업체 처지인데, 고인은 늘 모기업이 내놓은 약속은 분명하게 지킬 것을 강조하곤 했다. 다른 협력업체 대표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자리에서도 고인은 거침없었다.

"모기업에서 분명히 어머니를 불편하게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은 기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셨지요. 그만큼 직원들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은 경남도 우수기술인상(2001년), OTIS-LG 최우수 협력업체상(2002년), OTIS-LG 우수 협력업체상(2004년) 같은 성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04년 고인은 창원시 '이달의 CEO상'을 받으며 안팎에서 인정받게 된다.

"가정밖에 몰랐던 어머니가 CEO로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버지에 대한 마음에서 나온 것 같아요.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지요. 대인 관계는 좋은 편이었지만 애써 사교 모임에 나가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자신에게 엄했으나 직원들에게는 늘 관대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실수를 해도 질책보다 격려가 앞섰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또 엄했다. 스스로 흐트러지지 않되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되기를 늘 요구했다.

"어렸을 때부터 새벽 5시면 기상이었어요. 늘어지는 모습을 못 보셨지요. 저는 지금도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12시 전에 집에 들어가요. 어머니에게 각서를 썼거든요. 그래서 별명이 신데렐'놈'입니다. 그런 습관 속에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고 믿으셨던 것 같아요."

현대기업이 휴가 기간에 들어갈 무렵 고인은 점점 기력을 잃고 있었다. 고인이 세상을 뜬 8월 1일, 직원들은 휴가 기간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휴가를 접었다. 미리 정한 여행 일정까지 모두 포기하고 장례를 거들었다. 한 직원은 "그냥 가시는 모습 못 보고 가면 도저히 마음이 안 좋아서 안 되겠더라"고 말했다. 이호철 씨는 이런 모습이 어머니가 남긴 유산이라고 여겼다. "누구에게나 어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늘 품어주면서 무엇인가 깨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지요. 별다른 취미도 없이 회사와 가족밖에 몰랐는데…. 아버지가 못했던 일을 어머니가 하셨고, 어머니가 거둔 성과보다 더 큰 성과를 내도록 거드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믿음으로 회사를 꾸렸고 직원들은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호철 씨는 그런 기업을 만든 경영인으로 세상이 기억해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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