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미술인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보면 인원도 적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서로 위안이 되고 마음에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 격려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편을 가르고, 먹이사슬처럼 완장싸움에 뛰어들어 서로 이익에 눈치 보는 것이 가관입니다. 무늬만 작가고 그림은 안 그리면서 그런 것에만 신경 쓰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학생 가르치는 기본기도 불확실한 교수마저 있습니다. 본래의 교육자적 자질을 갖추었는지 의심하기도 전에 부업으로 미술계를 기웃거리며 활동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띕니다. 이러는 판에 물감과 붓만 들고 있으면 개나 소나 화가가 아니라는 법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철학이 없고 신념도 없는 영혼들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악수를 하고 박수를 칩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거니와 어떤 특정한 사람의 부분적인 결함으로 빌미삼아 그 사람의 전체적인 생각이나 사고를 싸잡아 매도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 활동의 기본은 작품이라는 겁니다. 작품보다 단지 돈 나오는 곳에 무슨 계획서나 보고서를 만드는 이를 어찌 작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미술의 역사를 보더라도 집단이나 단체가 미술사에 남는 것보다 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 우리들 마음속에 더 선명하게 각인 되어 왔다는 것은 증명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전시회를 하기위해서 돈을 얻어내야지, 돈을 타내기 위해 전시회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지원단체도 정치적 상황판단이 아니라 지역에 제대로 작품 하는 작가에게 직접적으로 도움 되는 방향으로 일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고 싶습니다. 한해 몇 조원가량의 문화예술기금이 저에게는 한 푼의 실질적인 도움도 없습니다.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누구에게 갔을까요? 아니 정말, 무얼 몰라서 그렇게 되는 걸까요?

   
 

작가의 기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 기본적인 동력을 잃은 미술인은 기생하여 살기 마련입니다. 기생하는 자의 특징은 양복을 입고 감언이설에 능합니다. 거기에다가 미술단체에서 주는 완장이나 하나 걸치면 금상첨화가 됩니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미술활동은 지역작가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또 지역에 애착을 가지는 계기가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몇 시간 전 술집에서 헤어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는 자니?"를 "너는 좌니?"로 잘못 알아듣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좌든, 우든, 보수든, 진보든 작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될 것 아니야!"

/강복근(미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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