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의 영국에서 본 한국] (5) 침몰 중인 보수당의 꿈 '거대한 사회'

요즘 거의 모든 언론의 외신면 꼭대기엔 어김없이 영국 폭동 관련 소식이 자리 잡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열흘을 넘기며 소강상태에 접어들긴 했으나 피해가 컸던 일부 대도시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한 듯하다. 그 기저엔 이번 사태에서 맥없이 무너진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데, 뉴스를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영국 경찰이 이번 폭동 내내 턱없이 부족한 기동력으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주도의 연립정부가 연일 발표하고 있는 강경일변도의 대응책도 시민들을 안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려졌다시피 이번 폭동의 주도층은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의 백인들인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 약 3000명 정도가 체포됐다고 한다. 캐머런 총리는 그들 모두에게 엄한 형벌을 내려달라고 사법 당국에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폭동이 발생한 가운데 무장한 폭도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을 받은 엉뚱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두 아이를 둔 맨체스터의 한 여성은 약탈자들로부터 반바지 한 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런던에 사는 23살의 한 여대생은 이미 털린 슈퍼마켓에서 3.5파운드(약 6500원) 상당의 생수를 훔쳤다는 이유로 각각 5개월과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들의 정서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다수의 언론들마저 정부의 수습책이 유사한 사태를 언제든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미봉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젊은이들이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 없이 사태를 키운 정부의 무능함을 강경책으로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지적받고 있는 부분이 바로 '지역공동체의 책임'만 외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다. 알려진 바와 같이 경찰 병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이유는 보수/자민 연립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대폭 삭감된 예산으로 수 천 명의 경찰이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이는 캐머런의 보수당이 작년 총선에서 메인 슬로건으로 내건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건설의 일환이었다. 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작은 정부'를 전제로 하는 이 노선을 전면 폐기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빅 소사이어티', '거대한 사회'의 실체는 뭘까. 대체 왜 많은 이들이 이번 폭동과 '빅 소사이어티'를 연관시키는 걸까. 토니 블레어가 늘 '제 3의 길'이란 말과 함께 붙어 다니듯 '빅 소사이어티'는 캐머런 총리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그가 내세운 이 노선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공동체에 보다 많은 권력을 이양한다. 둘째, 보다 많은 시민들이 공동체를 지키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것을 독려한다. 셋째,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한다. 넷째, 협동조합과 자선단체 그리고 사회적 기업을 적극 육성한다. 끝으로 정부가 가진 정보와 각종 데이터를 가급적 공개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언뜻 보면 매우 바람직한 노선으로 보이지만 그 속엔 나름의 무서운 시장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외피만 바꾼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정부의 기능을 대부분 지방정부로 이관하거나 민간분야에 위탁함으로써 국경이 없어진 다국적 자본에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지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자선단체와 기부자들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는 것은 양극화를 심화시킬뿐더러 국가의 존재 이유에 반한다는 논리다.

뿐만 아니라 이번 폭동에서 봤듯 세금을 받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치안의 책임을 공동체 주민에게 떠넘겨 경찰은 온데간데없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경단'(vigilance)이 주요 시설과 관공서를 지키는 일이 발생했다. 그들 가운데 세 명이 지난주 버밍햄에서 폭도의 자동차 돌진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빅 소사이어티 노선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마거릿 대처가 그랬듯 캐머런 정부 또한 '균형재정'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 겉만 번지르르한 단어가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에겐 전가의 보도다. 그들의 첨병 IMF 역시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균형재정을 주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가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국유산업의 민영화였다. 필자가 영국에 살며 가장 부담스런 생활비가 바로 그 민영화의 산물이었으니 전기료, 가스 요금, 교통비, 수도료였다. 영국의 물가가 비싸단 말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한다. 세계최고의 공항으로 흑자행진을 벌이고 있는 인천 공항도 팔겠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복지로 망한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지하게 묻고 싶다. 대체 복지로 망한 그 나라들이 어느 나라냐고.

   
 

그 논리라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복지예산을 지출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부터 차례로 망했어야 하지만 어디서도 그런 소식을 접한 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장에 국가를 내던짐으로써 극심한 양극화와 대규모 실업사태, 그리고 치안부재의 상황을 몰고 온 '빅 소사이어티'의 침몰에서 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번 영국 폭동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깁갑수(방송인·영국 셰필드대학 정치학 석사)

<김갑수의 영국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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