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풍접초 이야기

물기 가득한 바람에 아스라이 찬 기운이 돕니다. 미세하게 가을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여름이 가고 마는가 봅니다. 비만 잔뜩 내리다가 흐리고 또 비 오고 하늘은 햇살을 아꼈다가 가을바람한테 넘겨주려나 봅니다. 여기저기 가을꽃들도 보입니다. 벌써 성급한 코스모스가 피기도 했고요.

휴갓길 차를 타고 작은 동네 앞을 지나다가 동네를 가로지르는 개울 옆길에 늘어선 풍접초 꽃무리가 너무 아름다워 멈췄습니다. 한적한 시골 동네 앞에 가득 피어서 영역을 표시하듯 훌쩍 큰 키가 울타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름 화단에 가장 왕성하게 피는 여름꽃이라 할 수 있지요. 아메리카가 원산지라는 이 풍접초는 여러 개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기로 유명합니다.

   
 

제가 자랄 때는 마당 앞 화단에 몇 포기의 풍접초가 예쁘게 피곤 했었는데 할머니는 항상 '족두리꽃' 피었다고 하셨습니다. 7~8월 한여름이 되면 환하게 피어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웃집 새언니의 머리에 얹혔던 그 족두리가 정말 생각나게 하는 신비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경외감으로 바라보곤 했었는데 풍접초라는 본명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 식물도감을 보며 알았답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나비 같다'고 풍접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는데요. 그 외에도 꽃의 수술들이 길게 늘어진 모습이 거미줄 같다 하여 '거미의꽃'이라 불리기도 했고, 긴 수술의 쭉쭉 뻗쳐 있는 모습을 본떠 '고양이 수염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뿐만 아니라 보름 넘게 긴 기간 꽃이 핀다고 백화초·양각채·자용수라고도 불린답니다. 한방에서는 또 '취접화'라 하여 풍습으로 인한 사지마비·동통을 그치게 하며 전초는 타박상에 찧어 바르면 좋다고 하네요. 한여름 쨍쨍한 햇살 아래서 환하게 피어 흔들리며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면 꿀벌들 꿀 따기 좋은 밀원 식물이기도 합니다. 봄에 아카시꽃으로 꿀을 모으고 이어 밤꽃이 흐드러지고 나면 초가을 싸리꿀이 나기 전에는 벌들의 먹이가 될 꽃들이 별로 없습니다. 꽃이 없는 한여름의 밀원으로 이 풍접초의 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양봉을 치는 사람들이 한 밭 가득 풍접초를 심어서 꿀을 따기도 한다는데요. 그래서인지 요즘 풍접초가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집안의 화분에 심어놓고 바라보아도 좋은 이 사랑스런 꽃의 꽃말은 시기·질투라네요. 족두리 쓰고 결혼하면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억누르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지었을까요? 보는 이마다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는 이 꽃 한 송이 앞에서 여름의 더위를 잊습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