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습니다] 대운하 놀음의 사생아 '부산 식수대책'

부산 식수대책으로 야기된 '남강댐 사태'가 만 3년을 끌고 있지만 사회적 갈등과 논란만 증폭되고 있다. '남강댐 여유 수량' 문제를 놓고 정부와 경남도가 맞서는 가운데, '남는 물만 달라'는 부산시와 '그러고 싶어도 줄 물이 없다'는 경남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대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부산 식수대책, 올바로 추진된 사업인가 = 적잖은 사람들이 남강댐사태를 '낙동강 상수원 수질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알고 있다. 91년 페놀사태 이후 낙동강 수질과 먹는 물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불신이 일부 있기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결정적 원인도 아니다. 일부 정치인의 '선거용 정치놀음의 산물'이 정확한 표현이며, 본질이다. 그 중심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도심 바로 옆에 있는 남강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부산시민 표를 의식해 갖가지 공약을 남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대운하 건설(경부운하)'과 '이를 통한 1급수 부산 상수원 확보 계획'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부산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며 '경부운하 건설'과 그에 따른 부산 식수원 이전을 공약했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낙동강 수질이 좋아지고, 수량도 많아진다. 이를 이용해 강변여과수를 대량 취수하고, 영남권 광역상수원 댐 네트워크를 만들어 부산에 1급수 원수의 수돗물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말 '부산 식수대책'으로 공식화된 뒤 '남강댐 수위상승 논란'을 불러왔고, 최근엔 '남강댐 여유 수량 문제'로 비화됐다.

2008년 촛불시위 정국에서 대운하 공약은 공식 폐기됐지만 남강댐 사업은 부산 지역 정치인들의 집요한 공세로 '4대강 사업'과 연계 추진됐다. 남강댐 사업으로 대표되는 '부산 식수대책'은 이명박 대통령의 뜬금없는 '대운하 계획'의 사생아일 뿐이다.

허남식 부산시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이 서명한 '낙동강운하' 조기건설 공동건의문.

◇부산시민들, 정말 상수원을 옮기고 싶어할까 = 정부와 부산시 등은 '부산시민들이 낙동강 대신 남강댐 등 다른 물을 먹고 싶어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전혀 다르다.

부산시는 대체상수원 개발을 추진해왔다. 여러 차례 관련 연구 용역 조사 가운데 최근 것이 2007년 12월 '부산발전연구원'의 <부산 상수도의 대체원수 확보 방안>이다. 부산발전연구원은 성별, 연령별 표본에 따라 부산시민 500명의 상수원 이전에 대한 찬반 의사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다수 부산시민들은 부산 상수원을 남강댐 등지로 옮기는 데 오히려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체 상수원 개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부산 시민 응답자의 36.4%(182명)가 찬성한 반면, 265명(53.0%)이 '낙동강 수질개선을 통해 기존처럼 낙동강 물을 먹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낙동강이 있는 서부산권의 경우 '새 상수원을 개발할 경우 낙동강 수질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는 이유로 절대 다수가 반대했다. 부산지역 전문가 150명 조사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보고서는 엉뚱하게 남강댐 등지로 상수원을 서둘러 옮겨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용역이 대선 시기 추진됐음을 감안하면 부산상수원 이전이 실제 부산시민 의사가 아니라 당시 대운하 추진 논란과 맞물려 부산지역 일부 정치인들이 벌인 정치놀음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는 물만 달라'는 부산, 과연 그럴 자격이나 있나 = 최근 부산 허남식 시장이 언론 특별기고나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남강물을 달라'고 호소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식수 관련 부산시민 생존권 문제를 시장이 나서 경남도민들에게 호소하는 것을 볼 때 문제 해결 의지가 높다느니, 진정성과 헌신성이 느껴진다느니 말들이 오간다. 과연 그럴까. 허남식 시장은 그럴 자격이나 명분이 없다. 그 진정성은 말할 것도 없다.

허 시장은 대표적인 대운하(낙동강운하) 찬성론자다. 2008년 5월 촛불정국 당시 국민적 반대여론에 떠밀려 '대운하계획'이 좌초될 상황에 처하자 영남 5개 광역시·도 단체장과 함께 '낙동강운하 조기 건설하라' 촉구하는 데 앞장섰다. 제 식구 먹는 우물(낙동강)에 운하를 파고, 기름배를 띄우자고 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어 추진된 '4대 강 사업'도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자 같은 방식으로 '서둘러야 한다'고 앞장섰다. 허 시장의 입장은 지금까지 변함 없다. 낙동강 상수원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대구 '달성 첨단과학산업단지' 조성과 4대강 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김해 상동 낙동강 둔치 '폐기물 불법 매립'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데 '남강물을 달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 경남도가 최근 자체 용역을 통해 남강댐에 '남는 물이 없다'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남강물을 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며 '우정수 사업'이란 새 대안을 제시했다. 남강댐 관련 서부경남도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해소하면서 부산 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생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부산시는 무조건 남강물만 고집한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부산 물 문제와 남강댐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길은 더욱 멀어진다. 해결된다 해도 힘과 정치논리로 결판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골은 더욱 깊어진다. 상대방이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고, 불씨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원만한 합의가 최선이다. 남강댐 물 부산 공급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역 주민들이 결사 반대할 뿐 아니라 정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이제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에 줄 남강댐 물도 없는 만큼 경남도가 제시한 '우정수 사업' 등 대안을 놓고 정부와 경남도, 부산시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 차선이다.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다음 정부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 정부 임기도 다해 가고 있다. 물리적 시간이야 1년 넘게 남았지만 내년 상반기 총선, 연말 대선이 치러지기에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와 부산시의 현명한 판단과 책임 있는 행동을 기원한다.

/이환문(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