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5) 남해군 삼동면 동천보건진료소 김향숙 소장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모 배터리 광고 문구를 빌려 쓰는 게 적절치 않지만, 자그마한 체구에서 끊임없는 열정을 쏟아내는 게 이이를 만난 느낌은 딱 이랬다.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끊임없이 내어주는데, 그 열정은 폭포처럼 힘차고 강렬하다.

남해군 삼동면 동천보건진료소 김향숙(46) 소장. 김 소장은 웃음 임상치료사이자 전도사다. 한국웃음임상학회 부회장이자 웃음 임상치료센터 전임 교수이기도 한 김 소장은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다 죽자)'는 신조어로 보건소의 건강 증진·예방 의학을 실천하고 있다.

남해군 삼동면 동천보건진료소 김향숙 소장.

시골 보건소라고 얕잡아 보면 큰 코 다친다. 김 소장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일본 오이타 대학에서 다녀갔고 중국에서도 우리 보건소를 다녀갔어요. 전국에서도 찾아온"단다. 한국의 변방에 자리한 시골 보건진료소가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 가는 중이다.

김 소장의 웃음 임상치료는 오랜 시골 보건소 근무경험에서 말미암았다.

시골 보건소와 김 소장이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88년. 간호 관련 전문대학에 다니며 장학금을 받았는데 당시 이 장학금을 받으면 2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했단다. 그렇게 처음 사회와 마주한 곳이 전남 신안군 추포도라는 섬의 보건진료소다.

남해와 인연을 맺은 건 지난 1989년 10월이다. 추포도에서 2년간 의무 복무를 마칠 즈음 김 소장은 남편 고향인 남해와 자신의 고향인 경북 2곳을 찍어 발령 신청을 냈는데 남해군 남면 선구 보건진료소로 발령이 먼저 났단다. 이때부터 20년 넘게 남해서 살고 있다.

선구 보건진료소에서 김 소장이 진료와 더불어 처음 시작한 건 요통 운동이다. 시골 보건소의 주된 고객은 어르신들. 농사일이 우선인 어르신은 대개 몸이 고장 날 대로 고장 난 다음 보건소를 찾는다. 치료보단 고통을 줄이는 약물 처방에 의존하기 마련.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요통 운동을 시작했단다.

김 소장의 억척스런 열정은 이때 시작됐다. 요통 운동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자신의 공부가 우선이기 마련. 어르신을 위해 공부를 시작한 김 소장은 수중 운동·타이치 강사, 치료 레크리에이션 1급, 경락요법 연구사, 웃음 임상치료사 1급 등 각종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에는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자신이 쌓은 실력을 현장에 적용한 실전을 바탕으로 한 논문으로 학사·석사·박사를 땄다.

이쯤 하면 뒤로 물러나 조금 쉴 법도 하다. 그러나 "보건진료소의 역할은 예방 차원의 건강증진 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 소장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보건소를 벗어나 현장을 누빈다. 다른 직원에게 자리를 맡기고 자신은 마을을 돌며 다양한 건강증진 예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마늘이 주 농사인 남해에서 한창 마늘 수확을 할 때면 김 소장은 마늘 수확 현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마늘 수확을 하는 이들과 현장에서 몸을 푸는 체조를 한다. 김 소장은 전국실버댄스 경연대회 심사위원을 맡는 등 노인 건강 체조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 공을 들이는 건 매주 월·수·금요일이다. 이날 오후가 되면 보건진료소 바로 옆 새마을금고 2층 강당을 빌려 김 소장은 30여 명의 할머니와 한바탕 몸을 푼다. 자신이 양성한 웃음치료 강사들이다. 자신의 멘토라는 이들 할머니는 자신을 대신해 마을마다 웃음치료를 전파하고 있다.

매일매일 현장을 누비면 지치고 힘들 법도 하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비록 적은 사람일지라도 이런저런 말로 비평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야길 들을 때면 힘이 빠질 때가 있다"며 "그럴 때면 어르신 멘토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를 비워요. 또 바래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잡아요."

그는 "향숙(香淑)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늘 맑은 생각으로 나의 향기를 흩날리며 살려고 해요. 나답게 향숙이란 이름답게 살다 보면 사람들이 이해하고 또 헤쳐나갈 수 있겠죠"라며 웃는다.

김 소장은 오늘은 어느 현장을 누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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