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중대가리풀

긴 장마와 반짝 더위에 모두들 지쳤습니다. 정원의 라일락 이파리도 담장을 넘던 담쟁이넝쿨도 모두 축 늘어져서 오랜 습기로 약해져버린 잎맥들을 쉬고 있습니다. 뙤약볕에 거리로 나선 행인들의 얼굴도 지쳐 늘어지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양산 그늘도 직사광선 앞에 무력해진 한낮 '앞으로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디나?' 난감한 마음으로 날짜를 세어봅니다. 아직 팔월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여름을 지겨워하면서 차라리 추운 겨울이 낫다는 둥 호들갑을 떨어봅니다.

사람들은 올해의 긴 장마와 단발성 호우를 우리나라도 이제 아열대지대가 돼 버린 건 아닌가 걱정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계절도 앞으로 우기, 건기로 나눠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까지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에어컨은 더 많이 찾고 거리의 차들은 더위 속에서도 씽씽 힘차게 잘 달립니다. 기후변화 걱정은 하면서도 그에 대한 해결책을 실천할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중대가리풀 /위키백과 사전

도시 한복판을 걷고 있는데 보도블록 틈새로 옹차게 고개 내밀고 피어난 작고 작은 꽃들의 힘겨운 더위나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파릇파릇 줄기를 내어 밀고 그 와중에 꽃을 피웠습니다. 개미자리는 오졸오졸 열매를 맺기도 했고요. 주름잎 연보랏빛 꽃은 시들지도 않았습니다. 이 작은 것들의 힘찬 세상살이가 숙연해져 가던 길을 또 멈춥니다. 코끝으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지열을 견디고 중대가리풀 연둣빛 둥근 꽃송이들이 노르스름 꽃잎을 접고 익어갑니다. 더러는 밟혀서 짓이겨지고 몇 줄기는 상한 채로 열매를 맺는 중입니다. 울컥 이 작은 풀잎의 생의 한가운데 작은 그늘 하나 돼 줄 이 없었나 하는 감상에 젖어봅니다.

국화과의 한해살이로 자리매겨진 '중대가리풀'은 스님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스님 듣기 기분 상할 이름입니다. 스님 머리도 아니고 '중대가리'라는 상스런 이름을 누가 붙였나? 아마도 조선조 초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억불정책의 종교 탄압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 작고 작은 풀꽃의 이름에 뒤집어씌우다니…….

여봐란듯이 절 마당에 또 이 풀이 얼마나 잘 자라던지요. 이 작은 풀 한 포기의 강인한 생존전략이 눈물겨운데, 그마저 요즘은 그 약성이 널리 퍼져 약재로 채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몸 속 독소를 제거하고 대·소변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만성 비염이나 불면증·백내장·눈병·신경불안에 전초를 말려 달여 먹는다고 하는데요. 특히 말린 수세미 열매와 말린 전초를 섞어 달여 먹으면 천식 치료도 한답니다.

말린 뿌리는 쥐오줌 냄새를 풍기는데 진해·거담작용이 뛰어나다고도 하고요. 무심코 찾아본 약용도감에서 이 중대가리풀의 효용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같이 찌는 듯한 더위에 기 하나 안 죽고 견디는 그 힘이 그런 데서 나왔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중요 한약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 풀 한 포기에서 강인하고 당당한 삶의 자세에 숙연한 마음이 듭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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