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의 현장 골 깊고 인적 드물어

황석산(1190m)은 단풍이 빛나는 가을철인데도 골짜기가 너무 깊어서 그런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등산길에 만난 사람은 딱 4명뿐, 그들 가운데 3명은 산성까지 올랐다가 꼭대기를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왜 그랬어요’ 물었더니 ‘너무 힘들어서’라고 답한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인지라 산에서도 사람 많은 게 좋은지, “휴일인데도 이렇게 사람 없는 산은 처음 봤어”, 하나같이 투덜거린다.
황석산은 말 그대로 바윗돌로 이뤄진 산이다. 또 역사적 사실까지 아로새겨져 있다. 아마 경남 일대 산 가운데 임진왜란의 처절한 전투와 가장 깊숙이 연관된 산이 아닐까 싶은 곳이다.
창녕 화왕산도 임진왜란과 관련돼 있기는 하지만 격전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못에서 튀어나온 용에게 물려간 처녀가 나중에 아이를 낳은 게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됐다는 꼭대기 연못이나 곽재우 장군이 왜적에게 잡히지 않고 도망하도록 저절로 벌어졌다가 닫혔다는 배바우처럼 전설이나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가 우세한 편이다.
하지만 황석산은 다르다. 지금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얼룩져 있지만 1597년 초가을의 황석산은 때아닌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역사책은 전하고 있다.
함양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육십령은 부산과 울산을 통해 침략한 왜군들의 유일한 진격로였다. 조선도 왕실의 태생지인 전주를 잃을 수 없을 뿐더러 호남 곡창지대를 지키려면 죽을힘을 다해 막아야 하는 곳이었으므로 한 판 전투는 피할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 육십령의 들머리 황석산성 전투에서 조선군은 전멸했다. 병력에서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제아무리 뜻이 높다 해도 수만 왜군을 수천밖에 안되는 조선군이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음현감 곽준은 전사했고 싸우다 물러난 김해부사 백사림은 투옥되고 말았다. 조선군의 결사항전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왜군은 성을 깨뜨린 뒤에도 백성들을 아우를 생각은 않고 곳곳을 뒤져 닥치는 대로 쳐죽였다.
그 피어린 이야기를 아프게 품고 있는 데가 바로 피바위다. 봉전리 우전마을을 질러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황석산 정상 2.6km’ 팻말을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선 오솔길에서 다시 700m쯤 가면 나온다.
너비가 70m, 길이가 100m는 넘어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60~70도 기울기로 서 있다. 위쪽 산성에서 뿌려진 피가 흘러 바위를 흥건히 적시고 스며들어 바위 색깔까지 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옛날 피가 흘렀을 바위를 타고 오른편으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서 마실 물만 챙겨 산길을 따라 재빨리 올라가 버린다. 어쨌거나 여기서 한 숨 돌리고 다시 40분쯤 올라가면 산성이 나온다. 산성에서 20분만 더 오르면 커다란 바위로 된 정상이 나온다. 꼭대기는 가팔라 매여 있는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내려다보는 풍경은 시원하기만 하지만, 사적에다 기념물로까지 지정된 황석산 가슴팍이 과수원을 만든다는 핑계로 파헤쳐져 벌겋게 드러난 것이 아프다.



▶가볼만한 곳

황석산 들머리에 안의라는 꽤 큰 동네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현감이 다스리던 어엿하게 독립된 현이었다. 농협과 파출소 위쪽에 안의초등학교가 있다.
옛날 동헌이 있던 자리였지만 지금은 자취도 찾아볼 수 없다.
일제가 식민 지배를 위해 현청 자리를 골라잡아 소학교를 세웠기 때문이다. 조선의 정통성을 뭉개고 신식으로 치장된 자신들의 문명을 내세우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정문을 들어서면 ‘연암 박지원선생 사적비’가 길손을 맞는다.
북학파 실학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문필가로 알려진 연암이 1792년부터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낸 것을 기리는 빗돌이다.
지금 연암을 기념할 수 있는 사적지는 전국에서 이곳뿐이라는데 연암은 안의현감으로 있으면서 상당한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학교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도회지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할 것이다. 고목의 뿌리를 잘 활용해 만든 장승이 재미난 표정으로 서 있고, 동자석 망두석 연자매 다듬잇돌 장군석 돌솥 따위들이 잔뜩 모여 있기 때문이다.
왼편 구석에는 오래된 학교임을 말해주듯 우람한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그 사이에는 히말라야시다가 가지가 다 잘린 채 썰렁한 ‘민둥’나무꼴을 하고 있어 보기 민망하다.
하지만 곳곳에 다듬어진 향나무와 배롱나무가 있어 품격을 지켜주고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광풍루에서는 개울 건너 멋지게 늘어선 방풍림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함양 출신 학자 정여창 선생이 현감으로 있을 때 예로부터 내려오던 선화루를 크게 고쳐 지은 것이 지금 있는 광풍루라고 한다.
안의에는 개천을 따라 오래 묵은 갯버들과 벚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군데군데 소담스러운 돌담길이 남아 있다. 따스한 햇살을 쬐며 걷는 거리는 개 짖는 소리도 없이 조용하다.
찾은 날이 일요일인데다 공교롭게도 함양 읍내에서 씨름대회가 열려서 더욱 그런 모양이었다.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에서는 남해고속도로 동마산 나들목에서 자동차를 올려 진주쪽으로 가면 된다.
서진주 나들목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옮긴 다음 생초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국도 3호선 산청.함양 가는 방향으로 접어든다.
요금소를 지나 곧장 가다 다리를 건너 만나는 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가 왼쪽으로 틀어서 계속 가면 된다. 천천히 가더라도 2시간이면 족하다.
진주에서는 국도 3호선이나 대전~통영 고속도로 가운데 입맛대로 타면 되겠다. 요즘은 단풍철이라 고속도로에서는 길이 조금 막히기도 하지만 가는 길은 괜찮은 편이다.
국도로 가려면 동마산 나들목을 지나 의령에서 빠진다.
왼쪽 길로 접어들어 국도 20호선을 따라가다 단성에서 국도 3호선으로 갈아탄다.
안의에 가까워지면서부터 나타나는 ‘농월정 국민 휴양지’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전주로 가는 육십령 고갯길로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은 길인데다 좌우로 농월정.동호정.거연정.군자정이 골짜기마다 자리잡고 있어 보기에 좋다.
오른쪽으로 봉전리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황석산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 가는 버스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5분마다 있으니까 함양읍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나 택시를 타고 안의로 갈 수 있다. 아니면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30분마다 있는 거창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안의에서 내리면 된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은 교통편이 좋지 않다.
거창행 버스는 오전 9시 18분 첫차부터 오후 3시 54분 막차까지 8대밖에 없다.
함양행은 오전 6시 30분이 첫차고 막차는 오후 5시 10분에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사이에는 1대밖에 없으며 나머지 시간대는 평균 3대씩 오간다.
버스를 타려면 마산에서 진주까지 가서 다시 함양이나 거창행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좋겠다.
마산.창원으로 돌아올 때는 국도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부산으로 가는 차들이 남해고속도로를 꽉 채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국도 3호선을 따라 내려오다 단성에서 국도 20호선으로 옮겨 탄다. 의령에서 지방도 67호(1004호)를 따라 함안으로 들어왔다가 내서를 거쳐 빠져 나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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