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독일 베를린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자연스럽게 얼마 전에 끝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골자는 이전에 비해 세계 유수 콩쿠르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콩쿠르의 장점이 발군의 실력자 즉, 새로운 스타의 등용문이라는 것이지만, 입상자의 위상이 이전만 못하다는 것과 이제 더 이상 유명 지휘자들이 콩쿠르를 신뢰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 콩쿠르가 점점 그 순수성을 잃어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가 한국의 뛰어난 예술인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어떤 대회인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쇼팽 콩쿠르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가 아닌가! 또 1974년 피아니스트 정명훈(현 서울시향 지휘자)이 1등 없는 2등으로 우승이나 다름없는 수상을 한 이후로, 1990년 최현수 성악 우승, 1994년 백혜선 피아노 3위, 2002년 김동섭이 성악 3위에 입상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콩쿠르이다.

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 다섯 명이 입상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주최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한꺼번에 5명의 입상자가 나온 일이 있었던가? 일반적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물론 세계적인 유수의 콩쿠르에서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 출신의 음악가들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현실에서 이번 결과는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정작 이들이 국내 음악계 울타리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또 우리 내부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콩쿠르는 분명 영광스러운 출발선이다. 하지만, 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제무대에 네트워크를 가진 관리자 즉, 매니저가 없다면 콩쿠르의 우승자라 할지라도 설자리는 많지 않다.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국내 시장에서 머물다 대학 강단이 유일한 목표가 되는 현실을 뛰어 넘어야 할 때다. 젊고 역량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빛을 보기 위해서 한때의 눈부신 조명뿐만 아니라 예술가를 지원하고 양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행정에 밝지 않은 예술가와 예술에 이해가 부족한 행정 사이의 잦은 마찰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예술행정이었다. 체계화된 지원과 전략에 기반을 두지 못한 채 지극히 예술가 개인적인 노력에 의존하였고 훌륭한 성과에 대하여 그저 박수 한 번 쳐주는 관객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 예술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겠다.

   
 
한국 음악의 위상을 널리 알린 여러 수상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우리 지역에서도 더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배출되기를 꿈꾼다.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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