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생인권조례 등 교육개혁에 제동 걸려는 교육관료·언론의 논리

시험 감독을 들어가 답지를 먼저 나눠주고 곧이어 문제지를 나눠주는데 엎드려 있는 학생이 있다. "야! 넌 시험도 안치고 자니?"하고 물으면 귀찮다는 듯이 "다 했는데요"라며 답지를 내 보인다. 문제지도 보지 않고 OMR카드에 답을 다 적었단다. "너는 문제지도 안보고 답을 다 아는 귀신이냐?" 했더니, "문제지요? 보나 안보나 마찬가집니다!" OMR카드를 보니 1번에서 20번까지 같은 번호에 답을 마킹해 놓았다.

시작 종이 치면 그제서야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첫 시간부터 하루 종일 열심히 잠만 자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은 들을 생각도 않고 한 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노는 아이들…. 차라리 잠을 자는 아이들은 나은 편이다.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짝지와 끊임없이 잡담을 하고 있어 복도에 보내놓으면 장난치며 더 크게 떠드는 아이들, 수업을 시작한 지 10여 분이 지나면 3분의 1이, 20여 분이 지나면 절반 가까이, 수업이 끝날 즈음이면 몇몇 아이들만 듣고 나머지는 취침시간이다.

학교별, 남녀학교별, 교과별 차이는 있지만 이게 오늘날 교실의 모습이다. 도대체 교실에서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였을까?

필자가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됐다가 복직한 1994년 3월 첫 담임을 맡았을 때 윗글과 너무나 흡사한 현상을 보고 기겁을 했던 일이 있다. 해직기간이 약 5년이었으니까, 5년 전인 1989년과는 너무나 다른 학교 현실에 황당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놓고 교육계가 들썩인다. 경남에서도 지난 5월 '학생인권조례 제정 경남본부'가 설치 돼 서명운동을 시작했으며, 진보·보수 성향 교육단체 간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0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가 서울시 교육청에 제출한 '학생인권조례제청 청구인 명부'가 담은 희망상자. /뉴시스

교실붕괴의 현장, 교실에서 급우들끼리 폭력이 일어나고, 왕따시키고, 교실 밖에서 금품갈취나 절도와 같은 비행으로 담임교사가 경찰서를 드나들고…. 이런 현실을 두고 교실붕괴니 학교가 무너졌다는 표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옛날이야기요, 일반적인 현실에 대해 요즘 들어 왜 갑자기 수구 언론이 '교실이 무너졌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을까? 교실이 이 지경이 된 현실을 경영자인 학교장이나 장학을 한다는 장학사님, 교육 관료들, 교육학자들, 언론인들, 정치인들은 정말 몰랐을까? 알고도 모른 체 했을까? 진짜 모르고 있었을까?

교육자들이 이런 현상을 모르고 있었다면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고, 알면서도 모르는 체 했다면 직무유기다. 그런데 교실붕괴 현상이 시작된 지 20년이 가까워 오는데 왜 언론에서 갑자기 교실붕괴 타령인가? 물론 전보다 더 세련되게(?) 지능적으로, 더 잔인하게(?) 달라진 점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난 일도 아닌데 언론이 학교붕괴를 들고 나온 이유는 따로 있다.

즉 무상급식 시행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교육개혁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입시교육으로 돈벌이를 해 오던 학원과 이해관계에 있는 수구언론, 그리고 그 아류들이 교육개혁으로 잃게 될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자 교총은 '체벌 전면금지와 학생인권조례시행 후 학교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는 등 교육관료와 수구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월에도 교총은 서울·경기지역 초·중·고 교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생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교사가 줄어드는 등 교사의 열정과 사명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교실붕괴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신기루가 아니다. 교실붕괴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육정책과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일류대학이라는 학벌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로 개인은 물론 학급, 학교, 지역사회까지 서열화하는 성적지상주의 교육이 교실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실붕괴는 개인의 소질이나 개성을 무시하고 일류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수학문제까지 외워야 살아남는 교실에서 하루 15~16시간씩 앉아 견디는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강요하는 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까지 포기하라는 폭거다.

교권문제만 해도 그렇다. 교권은 문제학생을 체벌해 복종을 강요하거나 벌점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사람을 짐승처럼 두들겨 길들이겠다는 발상을 교육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가치내면화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교육학의 기초다. 놀이문화도 가정교육도 실종된 아이들이 사회의 모순과 위선, 폭력, 상업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교권이나 교실붕괴는 사회적인 병리현상과 환경, 입시위주교육정책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다. 사회가 병들었는데 교실붕괴만 막겠다는 '교실붕괴' 타령은 저질 코미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용택 경남도민일보 독자권익위원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