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멀리 있는 친구와 만났다. 그는 소위 ‘서울 명문대’에 재학중 이었는데 2~3시간의 만남에서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의 학교를 자랑스러워 했으며 이야기의 중심은 그가 쥐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만난 여학생이었는데 먼저 들어온 내가 이것저것 설명을 했고 자연히 자신을 소개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몇 학년이며 무슨 학교에 다니냐고 물었고 나의 대답이 끝나고 난 뒤 나도 똑같은 질문을 그 친구에게 했다. 순간 그 친구는 조금 당황한 얼굴빛으로 모 전문대 2학년생이라고 말하였고 자신의 과는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짐작컨데 그 친구는 자신이 전문대생이라는 것을 떳떳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내 학벌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보거나 피부로 직접 느끼거나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 경험은 결코 나와 우리가 학벌에 있어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지방대생 취업난 심각!’ 이라는 문구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거나 각 그룹에서 지방대생의 비율이 낮다는 보도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을 보면 학벌주의라는 병폐에 더 얽매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 지방대는 해마다 정원이 줄어든다고 한다. 수도권중심의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하기 위해 휴학계를 내거나 자퇴하여 다시금 입시공부를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술자리에서의 절망섞인 자조도 이따금씩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명문대 진학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대학 4학년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는 이제 나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진로를 앞두고 나 또한 이것저것 고민이 앞선다. 물론 학벌이 주는 중압감에서 나라고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처럼 다시 입시를 준비하거나 편입을 준비하기 위해 관련 신문을 뒤적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대학 3년은 그것이 결코 해결책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라는 것을 내가 위치한 자리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내가 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참된 진보라고 보는 것이다. 나의 사회생활에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과연 얼마만큼 나에게 짐이 될지 또는 그것이 오히려 해방구가 될지는 잘 모른다. 어쩌면 나 또한 평생 그 짐을 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만 잘 사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학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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