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로 옛길을 되살린다] (2) 구허역∼한티∼도선원에 들다

통영로 둘째 날 여정은 바다를 메워 만든 죽림신도시에 있는 통영 시외버스주차장에서 옛 구허역에 이르는 구앳재를 넘으면서 시작한다. 이곳 구앳재에는 수자리(=보초) 서던 옛 죽림수(竹林戍)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없어졌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만든 <국유림 실측도>에는 분명하게 나와 있는데도 그렇다.

처음 이 구릉에 올랐을 때 눈에 든 돌무더기가 바로 죽림수려니 여기고 잠깐 흥분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최근 채석한 돌을 방치해 둔 것이었다. 구앳재에 서니 죽림신도시와 호수 같은 구허포, 구허역이 있던 광도면 소재지인 노산리가 눈에 들어온다. 예서 사위를 둘러 여정을 가늠하고 구허역을 향해 고개를 내려서 구허역 옛터로 이른다.

통영시 광도면 노산리에 있는 구허역 터 전경. 이곳은 통영로가 지나는 곳이며 동시에 구허포가 있어 당시 수륙교통이 발달한 곳이었다. /최헌섭(두류문화연구원 원장)

◇구허역(邱墟驛) = 구허역은 지금 광도면 소재지인 노산리에 있던 전통시대 역원이다. 자리는 마을숲 뒷자리(북쪽) 즈음이었을 것으로 헤아려진다. <동국여지승람> 고성현 역원에 구허역(丘墟驛)은 현 동쪽 30리에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 구허역이 있었고, 그 전에는 구허부곡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 고성현 고적에 구허부곡(丘墟部曲)이 현 동쪽 30리에 있다고 했음이다. 같은 책 고성현 산천에는 구허포(丘墟浦)가 현의 동쪽 30리에 있다고 했으니 이 포구를 통해 바다로도 오갈 수 있는, 수륙교통이 결절(結節)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 10(경남편·부산편 Ⅲ)에는 노산리는 옛 구허역이 있던 곳이라 '역말' 또는 '역촌(驛村)'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채록해 두었다. 또한 노산리 남서쪽 들은 '마굿들' '역들' '역둔답(驛屯畓)', 그 동쪽 포구는 구허포(丘墟浦), 죽림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구앳재(구허치: 丘墟峙), 마을 뒷산에는 '찰방맷등' 또는 '허방맷등'이라 부르는 찰방 허씨의 무덤이 있다고 채록하였다.

◇한티를 넘다 = 구허역에서 한티로 이르는 길은 산자락을 따라 열려 있다. 지금도 그 길은 시멘트로 포장재만 바꾼 채 농로 또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로서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김해 김씨 재실에 있는 김씨 효열각과 그 곁 조석여 휼민비가 옛길을 일러주는 잣대 구실을 하고 있어 그리 헤아릴 수 있다.

관덕리 관일마을에서 바라 본 한티.

구허역에서 고성의 송도역으로 이르는 길은 국도 14호선을 따라 솔고개를 넘지 않고 관덕리 관일마을로 들어 한티를 넘는다. 관덕리의 중심 마을인 상촌에는 지석을 갖춘 것과 지석이 없는 지석묘(支石墓)가 한 기씩 있고, 주변에는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질그릇 조각이 흩어져 있어 마을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일러 주고 있다.

예서 한티를 향해 산길을 잡아 오르면 '하짐밭골'이 나온다. <한국지명총람>10(경남편·부산편 Ⅲ)에는 이곳에 '산하주막'이 있었다고 채록해 두었는데, 아마도 산 아래에 있는 주막이라 그리 불렸을 것이다. 이 근처에는 '하이때거리'와 '큰나무작골'이 있었는데, 앞의 지명은 솟대의 다른 이름인 화줏대가 세워져 있었던 데서 비롯했다. 큰나무작골은 큰 나무를 걸쳐 만든 다리가 있던 골이라 여겨진다.

게서 조금 더 오르면 제법 규모가 큰 저수지가 있고, 제방에 올라 바람을 쐬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농지와 유려한 곡선을 이룬 길이 묘하게 어울려 있다. 예서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인데, 화창한 날씨에도 그늘이 제공되는 호젓한 길이라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하여 임도로 이용하고 있어 산 속 자드락길이 주는 정서는 반감되었지만 지금까지 트인 길을 걷던 것과는 다른 아늑함이 있어 좋다. 이런 분위기에 젖어 저수지 곁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바로 그곳에 통제사 구현겸(具顯謙)의 불망비와 글자가 지워진 마애비(磨崖碑)가 있어 이리로 옛길이 지났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 산길을 따라 넘는 고개가 바로 한티이니, 그것은 큰 고개를 이르는 우리말이다. <한국지명총람> 10(경남편·부산편 Ⅲ)에는 한티를 달리 한치, 대티, 한탯재, 한티고개라 부르기도 한다고 채록하였다. 지금은 한티를 넘는 길이 임도로 조성되어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옛길은 불망비에서 곡벽을 따라 고개를 향해 열렸으니 지금과는 선형(線形)이 약간 다르다.

한티에 올라 원산리로 내려서는 길에는 밝고 경쾌한 비발디의 선율이 귓전을 맴돌며 따라 오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 청량한 바람과 푸른 신록과 어우러진 하늘이 주는 시원한 색감이 그런 느낌을 불러 오는 것일 게다. 고개를 내려서면 옛 도선원(道善院)이 있던 원산리(院山里) 원동마을인데, 원산리는 원동과 오산을 합치면서 그렇게 고쳤고, 원동은 원이 있던 곳이라 그런 이름이 남았다. /최헌섭(두류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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