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석잠풀 이야기

사월의 산야는 연둣빛 일색입니다. 눈부신 연두가 희고 붉고 노란 꽃들의 색깔을 더욱 청초하고 화려하게 만듭니다. 논이나 밭두렁, 오솔길 어디든 초록, 초록, 초록의 윤기나는 생명들이 저마다 이름 하나씩 달고 환하게 안겨옵니다. 손끝으로 풀잎과 줄기를 쓰다듬으며 이름 하나씩 불러봅니다. 버드생이, 벼룩아재비, 꽃마리……. 이름을 불러 나가다 아슴아슴한 이름 앞에서 한참을 뒤척입니다. 부처꽃 어린 순 같기도하고 뾰족한 이파리가 쉽싸리 같기도 한데 쉽싸리가 자랄 만한 곳은 아니고, 기억의 언저리를 더듬다가 "아! 석잠풀이구나" 합니다.

습기 어린 곳에 무리지어 자라는 석잠풀.

개울가나 논둑 습기 어린 곳에 무리지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해마다 그 자리 그맘때면 잎을 피우고 사람들은 순을 뜯어다 봄나물로 먹고, 여름에는 긴 줄기를 올리며 껑충 솟아올라 층을 이루는 석잠풀입니다. 한창 꽃이 피었을 때는 층꽃풀과 착각하기 쉽지만 석잠풀은 일정한 간격으로 층을 이루기에 이내 구별이 됩니다. '토석잠'이라고도 하는 석잠풀은 산야에서 흔히 자라는 야생초인데 요즘 중국에서 들여와 재배되는 약용식물 '초석잠'과 같은 종류인데 효용이나 모양도 흡사합니다.

초석잠은 뿌리가 마치 굼벵이나 섶에 오르기 전의 잘익은 누에와 같이 생겨 '누에 잠(蠶)'자를 써서 석잠·초석잠 등으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민간에서 애용된 흔적은 약하나 요즘 그 약효가 대두되고 있는데요. 주요 성분은 사포닌·알칼로이드·유기산·플라보노이드 등이며 뿌리에는 쿠마린 성분이 나타날 뿐 아니라 비타민 성분과 4당류인 스타키오스를 함유한다 합니다.

특히 전초는 혈압을 내리며 진정 작용이 탁월하답니다. 세기는 익모초 두 배라고 나와 있습니다. 한방에서 혈압내림·진정·고혈압·심근질병에 주로 쓰며, 민간에서는 사독이나 피부질병·신경쇠약 치료에도 썼답니다. 말린 전초를 달여 아침 저녁 마시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풍·기침·지혈·종양 치료에도 다양하게 쓰인다니 들판에 무심히 자라던 풀 한 포기가 명약 중의 명약이었음을 알면 놀라움이 더 클 것입니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너무 싱싱해 마치 누에 모양 뿌리가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초석잠' 몇 kg을 선물로 받아 토마토와 함께 갈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체험은 개울이나 길가에 무성히 자라는 들풀들에 우리 건강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증명해 줬습니다.

'숲은 의사 없는 병원'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기며 들풀들 이름 하나 하나에 귀하게 스며 있는 공존공생의 희망을 찾습니다. 산야에 무성히 솟은 들풀들을 통해 건강을 보전하며 자연에 감사하고 보호할 줄 아는 지혜로, 함께 자연공동체가 되어가는 길을 연둣빛 들판에서 발견합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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