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36) 수로부인에게 바친 꽃은 무엇일까

봄 햇살 받으며 취나물도 뜯을 겸 뒷산에 갔다. 산개구리들이 알에서 깨어 까만 올챙이로 변신을 했고 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맞아준다. 그림을 그려도 저렇게 예쁘게 그릴 수 있을까? 벌써 진달래는 끝물이고 철쭉이 반겨준다. 요즘 진달래와 철쭉, 산철쭉과 영산홍을 공부하면서 수로부인에게 꽃을 따다 바친 노인은 진달래를 땄을까? 철쭉을 꺾었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수로부인과 철쭉 = 신라 최고의 미인 수로부인이 천길 높은 낭떠러지에 핀 철쭉꽃을 왜 따 달라 했을까? 소 몰고 가던 노인이 왜 귀한 암소를 버리고 높은 벼랑에 올라가 따다 주었을까? 왜 젊은이가 아니고 노인일까? 그냥 따다 준 것이 아니라 헌화가를 지어 바친 수로부인은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바다에 사는 용이 잡아가고 지나가던 노인이 꽃을 바쳐도 마누라 탓하지 않는 강릉태수 순정공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수로부인이 본 꽃은 진달래일까? 철쭉일까? 영산홍일까?

철쭉.

<조선왕조실록>, <양화소록>, <지봉유설>에도 철쭉, 영산홍이 나오는데 철쭉인지? 산철쭉인지? 영산홍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지금도 글깨나 읽었다는 지식인들에게 진달래와 철쭉, 산철쭉, 영산홍이 어려운데 신라 시대엔 굳이 꽃을 분류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진달래, 철쭉, 산철쭉, 영산홍 모두 다른 꽃인데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

삼국유사에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花盛開(여병림해 고천장 상유척촉화성개)"라고 나온다. 철쭉 척( )자는 머뭇거린다는 뜻이고 촉( )자도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한자만 보면 철쭉이 맞는 듯하다.

산철쭉.

◇먹는 참꽃과 못 먹는 개꽃 = 벌이 철쭉 꿀을 빨면 기절을 한다고 했던가? 양도 먹지 않고 피해간다는 철쭉은 초식동물이 먹지 않아 산 정상에 그렇게 넓게 퍼질 수 있었다고 한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고 철쭉은 못 먹는다고 개꽃이다. 철쭉은 진달래보다 색이 연하다고 연달래, 진달래 다음에 연달아 핀다고 연달래라고 부른다.

◇진달래꽃 = 방방곡곡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봄꽃이 진달래꽃이다. 있는 집에선 삼월 삼짇날 제비가 돌아올 때 진달래꽃을 따다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 화전놀이를 즐겼다. 없는 집에선 허기를 채우려고 온산을 헤집고 다니며 먹고 또 먹었던 꽃이다. 국민 누구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께 소월의 진달래꽃 시를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진달래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꽃이다.

진달래.

진달래는 고려 가요 '동동'에는 '달욋곶'이라고 나오고 조선 중종 때 나온 <훈몽자회>에는 '진달위'로 되어있다. 참꽃이라고 많이 부르고 두견화라고도 부른다. 믿었던 신하에게 나라를 뺏긴 원한을 품고 두견새가 되어 목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는데 그 피가 떨어져 핀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란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두견화라 부르고 진달래꽃으로 빚은 술을 두견주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여인이 사랑한 꽃은 진달래가 맞지 철쭉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머리나 꽃병에 꽂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산에 나무하러 간 총각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한 아름 진달래를 꺾어 내려오고 나물하러 간 처녀도 머리에 진달래를 꽂고 내려온다. 끈적끈적 달라붙고 먹으면 입이 퉁퉁 붓는 철쭉은 사랑받지 못했다. 천길 벼랑 위에 피는 식물은 철쭉보다는 진달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영산홍(映山紅) = 화려한 영산홍을 보면 수로부인이 반한 꽃이 영산홍이 아닐까 할만큼 빛깔이 예쁘다. 영산홍 하면 고급스러운 느낌이 먼저일까? 왜색 느낌이 먼저일까? 빛깔을 어떻게 표현할까? 철쭉과 산철쭉을 일본 사람들이 오랫동안 개량해서 만든 수백 가지 품종이 영산홍이다. 고려 시대 영산홍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세종 때 일본에서 철쭉을 보내온 기록이 있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영산홍은 진달래보다 뒤에 피고 철쭉보다 앞에 핀다"고 나온다. 오래 전 영산홍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많이 심긴 듯하다. 항일 유적지나 이순신 장군 관련 유적지에서 독립기념관까지 조경할 때 영산홍이 빠지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영산홍.

◇학교의 꽃 교화 영산홍 = 경남에 있는 학교 중 8.9% 학교의 꽃 교화가 영산홍이다. 교화 순위 5위다. 1위가 장미, 2위 동백, 3위 목련, 4위 개나리다. 6위는 철쭉(7.2%), 7위가 진달래(2.7%)다. 진달래, 철쭉, 그 다음이 영산홍일 듯한데 경남 교화 순위는 영산홍이 앞선다. 산에서 쉽게 보는 진달래와 철쭉은 귀한 줄 모르고 돈을 주고 사다 심어야 하는 영산홍을 더 귀하게 대접하지 않았나 추측만 해 본다. 진달래가 교화인 학교에 진달래가 진짜 있을까? 철쭉이 교화인 학교에 영산홍 말고 산철쭉 말고 진짜 철쭉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진달래 빛깔은 처녀의 발그레한 빛깔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찔레꽃 붉게 피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해당화 피고 지는' 흘러간 옛 노래에 나오는 꽃 노래에 공통으로 흐르는 하나가 진달래는 처녀의 발그레한 빛깔인 듯하다.

진달래꽃 활짝 핀 봄날 조선 양반들의 바깥놀이 정경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상춘야흥>.

처녀와 가장 어울리는 꽃은 진달래일까? 복사꽃일까? 살구꽃일까? 이규태씨는 진달래, 연달래, 난달래 모두 처녀의 젖꼭지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석하면 복숭아꽃의 도화살, 살구꽃의 행화촌, 진달래 모두 은근히 야하다. 고향 생각나는 푸근한 꽃이기도 하지만 그 빛깔은 은근히 춘정을 자극하는 수로부인의 꽃이기도 하다.

/정대수(함안 중앙초등학교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