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바위 끝에 앉아 바다를 품어본다면…

남해는 어디나 다 아름답다. 남해대교를 건너면서부터 이어지는 이순신 장군 전몰 유허지 화방사 대국산성 금산 보리암 상주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미조해안관광도로 등등 잠깐만 떠올려도 숱하고 얼핏 봐도 하나 같이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아스팔트도 잘 닦여 있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 시원스럽다. 굳이 항도마을까지 갈 것 없이 아무데나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가도 되겠다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다른 데처럼 곳곳을 파헤쳐 개발 몸살을 앓고 있지도 않다. 미리 마음을 정하고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아 눈에 거슬리는 건물 따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도로를 넓히느라 공사 중인 몇 곳을 빼놓고는 깨끗하기만 하다.
남해는 복 받은 땅이다. 경관이 빼어나 사시사철 관광객이 찾아오고 농업 생산이 어느 정도 받쳐 주니 굳이 공장 굴뚝을 이곳저곳 세울 필요가 없다. 더구나 환경친화적인 생태 주차장을 곳곳에 만들 정도로 환경행정이 이뤄지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항도마을은 남해 다른 관광지에 견줘 크게 멋진 데는 아니다. 그냥 한 집안 식구가 하루 들러 재미나게 놀다 갈만한 곳이다. 식구 가운데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안성맞춤이고 갯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해보는 즐거움을 아는 이도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항도마을 한가운데는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양쪽으로는 그르릉그르릉 소리를 내는 파도가 갯바위를 그대로 쓸어주고 있어 볼락.망상어.열기 등 여러 가지 물고기가 낚시꾼의 손끝을 짜릿하게 해준다.
마을 오른쪽으로는 목섬과 딴목섬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원래부터 섬인지 아닌지 몰랐을 정도겠는데 이제는 방파제로 모두 뭍에다 붙여놓았다. 한편으로는 멋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지만 파도 부딪히는 소리가 아직은 시원하다.
왼쪽에도 파도에 깎이고 닦여 만들어진 갯바위들이 우뚝 서 있다. 구멍이 움푹 파진 데도 있어 멀리서 보면 꽤 큰 동굴 같이 보이기도 한다. 마주 보이는 팥섬도 항도마을에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남매 둘이 바닷가 자갈과 갯바위 사이사이를 훑으며 놀고 있다. 통 속에는 성게와 조그만 소라와 불가사리, 별나게도 몰랑몰랑한 게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작은 대그물을 들고 설쳐대는 걸로 미뤄 손가락 만한 고기라도 몇 마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산그늘에서는 떼지어 온 낚시꾼들이 조용히 점심을 먹는다. 아마 낚싯대는 동행한 아내에게 잠깐 맡겼는지도 모르겠다. 부인네는 물 빠진 바닷가에 서서 멀리 바다를 내다본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저당 잡힌 10여 년 세월이 왜 아쉽지 않겠는가.
여름 한 때 빛나는 관광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항도마을은 자그맣고 조용하기만 했다. 들머리 구멍가게도 낡은 담배광고가 붙은 유리창 너머로 나무 탁자가 몇 개 있는 품이 도회지 감수성으로 말하자면 너저분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시골 버스 정거장 조그만 가게에서 어묵 국물 훌쩍거린 기억이 있는 이라면 오히려 자연스럽고 정다워 보일 것이다.


▶가볼만한 곳

남해에서 볼 일을 다 보고 남해대교로 돌아나오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맞이하는 관광지다. 이락사(李落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이순신(李) 장군이 떨어진(落) 곳에 지은 사당(祠)이다. 사당 안쪽 비각에는 대성운해(大星隕海)라고 적힌 현액이 걸려 있다.
“민족의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는 뜻으로 안내판은 “65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내렸다”고 적어 놓았는데 어째 유신 잔재인 것만 같고 썩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들머리에는 몸소 앞장서서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고 왜군이 쏜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두며 하신 말씀을 새긴 돌이 있다.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가 바로 그것이다. “싸움이 급박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실제로 했을 말보다는 실록에나 나옴직한 한자말을 새겨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가 싶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충무공의 단심을 전해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관음포 앞바다를 한 눈에 바라보는 첨망대는 이락사에서 500m쯤 더 가야 나온다. 우러를 첨(瞻)자를 써서 한껏 존경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비각만 둘러볼 뿐 정작 예까지 발품을 팔지는 않는다. 앞바다는 이락파(波), 서 있는 자리는 이락산(山)이다.
여기는 해거름녘 남해 관광을 마치고 나갈 때 들르는 것이 좋다. 기우는 해가 아름답고 장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여기서 왜군을 물리치다가 왜적의 유탄에 맞아 숨졌다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던 어린 딸아이 하나가 “저기 출렁출렁 붉게 빛나는 게 다 이순신 장군 때문이야. 저렇게 피를 많이 흘렸어.” 되묻는다.
아이의 기발한 상상력이 그대로 마음을 울리는 시가 되어 나왔지만, 정작 상상력을 자극할 만큼 강렬하게 햇살을 되쏘며 출렁이는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일상에 빠져 자기 앞가림에만 정열을 바치는 이들에게 ‘네 인생은 무엇이냐.’ 물어오는 듯하다.


▶찾아가는 길

창원.마산.진주쪽에서 순천 방향으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진교 들머리에서 빠져나와 길 따라 12km쯤 달리면 남해대교에 가 닿는다.
남해대교를 건너서 이어지는 19번 국도를 따라 곧바로 간다. 보리암도 지나 상주.송정해수욕장도 지나 미조면 쪽으로 계속 달리다가 삼거리가 나오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진다.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항도마을 대신 미조해안도로가 나오므로 조심해야 한다.
갈림길에서 3.5km 정도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섬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어촌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항도마을이다.
살며시 오른쪽으로 접어든 다음 다시 오른쪽으로 나 있는 다리를 지나 알맞은 곳에다 자동차를 세우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마산남부터미널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40분~1시간 간격으로 14대가 다닌다. 마산합성동터미널에서도 같은 시간대에 30분~1시간 간격으로 16대 다닌다. 마산에서 남해까지는 2시간 가량 걸리지만 진주에서 가려면 1시간만 하면 되고 차편도 많은 편이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20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하루 43번 버스가 오간다. 남해에서 진주 가는 것은 막차가 오후 8시 30분이어서 당일 돌아가는 데 조금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마산행 차편을 놓치면 진주로 버스를 타고 나간 다음 진주에서 다시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도 된다는 얘기다. 진주서 마산까지는 9시 50분에 떠나는 막차가 끊어진 뒤에도 10시 30분부터 새벽 1시까지 50분마다 심야버스가 다니기 때문이다.
남해읍 공용버스터미널에서 항도마을까지는 20km 남짓 된다. 오전 6시 35분부터 오후 8시까지 시간대마다 한두 대씩 16차례 오간다(오후 4시대에는 한 대도 없다). 요금은 2300원이고 자세한 문의는 (055) 864-7102로 하면 된다.택시 타기에는 좀 먼 거리니까 시내버스편을 이용해야 돈을 아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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