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 내내 방송된 TV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 방송3사는 지금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KBS·MBC·SBS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각 10편 이상의 영화를 준비해 심야나 낮 가릴 것 없이 방영했고, 가족드라마 편성을 대거 줄였다. 명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거나 전통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가 가미된 시사·교양 프로그램 편성이 대폭 줄어 안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신정과 설날의 간격이 짧았음에도 신정 때 방영된 것이 설날 다시 방송된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고, 심지어 24일 오후 6시 40분에 방영된 KBS 는 다음날인 25일 오후 2시 곧바로 재방송돼 전파낭비가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설 연휴 방송 3사를 통해 방영된 영화는 총 33편. 이중 <투캅스> <용형호제> <007 시리즈> <스피드>는 올 설에도 어김없이 방영, 명절기분(?)을 내게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휴먼드라마의 부재. 연휴기간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설날특집 드라마는 MBC <며느리들> 정도에 그쳤다. SBS <용띠개띠>는 지난 신정때 방영된 것이었고, 도 앙코르 특선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재방영되었지만 첫 방영 당시에도 나열식 구성으로 성의가 없어 보였던 것이라 앙코르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방영하기엔 억지스러웠다.

쇼·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역시 기획력의 안일함을 드러냈다. 쇼프로그램은 해마다 반복되는 연예인 부부 출연, 아나운서 동원, 외국인들의 장기자랑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 또한 노래대결 정도에 그쳐 “연예인들이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니 명절이 맞긴 맞는군”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23일 오후 6시 50분 MBC에서 방영된 <올스타 가요제>나 SBS <김희선의 아주 특별한 아침>은 구성이 지난해 연휴 때와 달라지지 않았고 <두남자쇼> <기막힌 대결> 등 오락 프로그램 역시 ‘베스트 모음’‘스페셜 모음’으로 지난 방영분을 다시 모으는 재탕 수준에 그쳤다. 올 신정과 설날의 간격이 겨우 3주였다는 것이 안일한 연휴방송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가족간의 연결고리가 점점 느슨해지고 젊은이들에게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지만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을 내건 TV에서조차도 명절을 쉬면서 ‘운 좋으면’ 못 봤던 영화나 볼 수 있고, 하루종일 TV가 방영되는 날 정도로 생각하게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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