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기자가 만난 사람]윤여준 합천 평화의 집 원장

"내 정체성 물어보면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 무엇이 지금 이 시대에 이 시점에 국민에게, 대한민국 공동체에 유익한 거냐 하는 걸 기준으로 보면 때론 보수적인 생각일 수도 있고 때론 진보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그게 뭐가 나쁘냐. 어떤 정책이 국민을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 거냐가 문제다.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잘못했느냐면, 민주주의나 진보적인 가치를 중시했지 실제로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 경제를 소홀히 했다.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국민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민주주의는 원치 않는다. 앞으로 진보도 민생문제를 중시할 거라 본다. 극단적 보수, 극단적 진보 빼면 중도적 진보, 중도적 보수는 별 차이가 없다. 싸울 일이 없다." '건전한 보수'라 불리는 윤여준(72) 전 환경부 장관이 진보 세력에서나 할 법한 원폭 피해 2세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복지와 평화를 주창하는 그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현 정부를 꾸짖었다. 

   
 

 

-합천에 연고도 없고 출생지도 충남 논산인데, 어떻게 합천 평화의 집 원장 일을 하게 됐나.

"3년 전 인연을 맺은 혜진 스님이 원폭피해자 돕는 일을 하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맡게 됐다. 평상시 좋은 일 한다고 말해 놓고 안 맡는다고 할 수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어느 때보다 원전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증이 커졌다. 엊그제 우리나라에서도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

"핵 그러면 무기 만드는 것으로 생각해왔잖나. 핵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 어느 나라에서 문제가 생기든 인류 재앙이다. 방사선 노출에 대해 고통을 가장 절감하시는 분들이 원폭피해 2세 분들이다. 이런 계기에 한국 사회가 2세 분들의 고통을 알고, 어려움 나누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현 정부의 일본 원전사고에 대한 대비책은 어떻다고 보나.

"굉장히 안이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부 기구가 통폐합됐다. 과학기술처 없어지고 교육부 되면서 원자력 기구도 줄고 위상도 낮아졌다. 정부가 국민의 지나친 불안감 없애주려는 심정 이해 가지만 우린 안전하다 하면 신뢰 안 간다. 엊그제 방사성 요오드 검출됐다 보도했는데 정부가 3일이나 감췄다고 하잖나. 국민 불신 생긴 게 어제오늘 일 아니지만 정부가 불신받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국가적 불행이다. 저명한 원자력 학자들도 원자력 에너지가 절대로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라고 한다. 원자력발전소 폐기물 저장 비용까지 생각하면 어마어마하단다. 정부도 원자력 의존할 건가 안 할 건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산업 구조를 에너지 소비가 낮은 구조로 바꾸는 데는 많은 돈과 시간 걸린다. 정부 방침이 서면 반드시 국민 합의 얻어야 한다."

-원폭피해자 2세 지원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폭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플러스 요인도 있을 것 같다.

"일본 지역 주민들한텐 엄청 불행한 일이다. 남의 불행을 우리 하는 일에 이용하게 보여선 안 된다. 어차피 이제 원자력 문제는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됐다. 피폭되면 2,3세까지 가는 걸 설명해 알려야 한다. 이미 히로시마 때 피폭된 후손들이 질병을 앓고 있다. 이번 사고 후 주위사회에서 관심을 더 두게 됐다. 경남도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다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고맙다."

-피폭 2세 환우회 모임이 있는데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

"사회가 피폭자들을 몰랐다. 방치했다. 이분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우선 몸이 아프잖나. 그러다 보니까 직업도 못 갖고, 정신적 고통이 많다. 도와드리려면 아픈 거 치료하고, 요양하게 해야 해서 요양시설 만들려고 한다. 시설, 직업훈련도 필요하다. 단순히 어려움 돕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의 평화, 인류의 평화, 핵 없는 세상 돼야 하니까 합천이라는 고장을 평화의 고장으로 만들고, 잘하면 평화공원도 만들고, 세계에 평화 의지도 알리고, 해야 할 사업이 많다."

-구체적으로 지원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지원도 받아야 할 텐데.

"우선 부지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관심이 많아 합천 오셔서 금일봉 주시고 땅도 100평 사셨다. 불교방송, 불교신문에서 1평 땅 사주기 모금 활동도 한다. 우리 힘으로 어느 정도 확보하고 부족한 건 경남도, 합천군, 정부에 지원받을 계획이다. 완전히 정부나 지자체에 의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자체는 재정 어렵다. 중앙정부는 재력이 있다 해도 도울 데가 워낙 많은데 한 군데만 돕기가 어렵다."

지난 30일 오전 합천 평화의 집에서 '원폭피해자와 2세 복지지원센터' 개소식이 열렸다. 윤여준 원장은 인사말에서 "지난해 3월 1일 합천 평화의 집이 생겼고, 겉으로 보기엔 초라하지만 복지지원센터도 오늘 문을 열었다"며 "내년 이맘때는 전혀 다른 모습의 지원센터와 요양시설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호 기자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원폭피해특별법' 제정인 것 같다.

"특별법은 오래전부터 추진한 건데, 어려운 것이 정부가 동의해야 한다. 예산이 수반되는 일이라서. 국회의원 의지가 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가 오랫동안 지원하겠다는 방침이 서야 한다. 정부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청와대, 보건복지부도 도와주고 싶어한다. 예산 한정돼 있고 쓸 데는 많고 여기를 도와주면 저기도 도와줘야 하고 형평성 문제가 있으니까 마음이 있어도 못 도와줘서 안타까워한다. 성의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고충 이해해야 한다."

-피폭 2세들의 질환을 방사능 유전으로 봐야 하는지 논란이 있다.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만 따로 앓는 병 있는 건 아니다. 발병률 높고 한번 발병하면 금방 상태가 나빠지는 특징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연구한 결과 의학적으로 유전 근거는 없다. 우리 독자적으로 연구해 볼 거다. 기본적 예산이 만들어지면 실태조사 하고 의사분들에게 호소해서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연구해볼 생각이다. 확실히 근거 있다 하면 우리가 도움받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합천 평화의 집뿐 아니라 평화재단 대표, 지방발전연구소 소장 명함도 있다.

"평화재단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를 연구하고, 사단법인 지방발전연구소는 지방자치 연구도 하고 사업, 컨설팅도 한다. 지방자치 연구는 N 세대가 지방자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지방 발전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이런 걸 연구하는 쪽으로 특화하고 있다."

   
 

-정부의 복지, 평화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반도 평화는 남북관계를 말하는데, 천안함, 연평도 사건 후 한반도 평화 깨졌다. 북한은 우리 경쟁 상대 아니다. 북한이 이판사판 몸부림치는 일 없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정부가 관계를 단절하고 북한은 압박하고 제재하니까 북한이 즉흥적으로 튄다. 북한이 잃을 게 뭐 있나. 우린 잃을 게 얼마나 많나. 아무리 미워도 관리를 해야 한다.

현재까지 한국사회 복지는 개인이나 가정이 책임졌는데, 최근에 와서야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몫이 있다는 생각을 국민이 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복지는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특히 일자리, 실업자 문제에 많은 노력 해야 한다. 양극화는 뭘 의미하냐면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단 뜻이다. 정부가 불평등 완화하는 정책 쓰지 않으면 지금 말하는 자본주의나 시장경제를 하기 어려워진다.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나뉘면 다수 가난한 사람 가만히 있나."

-환경부장관을 지냈으니까 정부 환경정책 중 조언할 말이 있을 것 같다.

"환경부 공무원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요즘의 환경부는 환경부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만큼… 솔직히 그게 현실 아니냐. 환경부는 정부 내에서 환경 보존 위해 투쟁하라고 만든 부처다. 개발 위주로 가는 걸 막으라고. 근데 완전히 개발 주도로 가 버리고, 환경부는 그 사람들의 논리를 합리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비친다. 그럼 환경부가 왜 있어야 되나."

-지난 6·2지방선거 때와 같이 내년 총선도 복지가 이슈화되리라 보나.

"복지라는 어젠다는 누가 집권해도 피해갈 수 없고, 피해 가서도 안 된다. 우린 복지에 이제 막 눈을 뜬 거니까. 국가가 해야 할 몫이 있다. 국정에 우선순위가 있다. 결국, 국가 최고 지도자와 국민이 국정 우선순위를 어디 둘 건가 의논해서 합의하면 복지의 우선순위가 높아진다. 예산 우선 배정하면, 흡족하지 않아도 더 나은 복지정책 쓸 수 있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걸 생략하고 자기 판단만 밀고 가니 갈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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