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은 맹자의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맹랑한 주장에 이마를 찌푸렸다.

“좋소. 그럼 애초에 인의에 대해서 의견을 주신다고 했는데 한 말씀 해 보시지요.”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게 인의의 정치지요.”

“그게 인의의 정치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힘써 베풀어 왔소.”

“어떻게 말씀입니까?”

“예를 들자면,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이들을 하동(河東)으로 옮기고, 늙은이와 아이들에게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누어 주도록 하고 있소.”

“그리고요?”

“그와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면 하내의 곡식으로 구호하도록 힘쓰고 있소.”

“그랬더니요?”

“한데, 백성들은 과인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이웃 나라의 백성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못 들었소.”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요!”

“대왕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지요?”

“어디, 하고싶어서 하는 전쟁이란 게 있겠소.”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전쟁터에서 백병전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무기도 버린 채 도망치기 시작했답니다.”

“비겁한 놈들이구먼.”

“그런데 오십보를 도망친 병사가 저만치 백 보 앞으로 도망치는 병사를 보니까 우스워 죽겠더랍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지요. ‘저 비겁한 놈아’하고요.”

“미친 놈들이군.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야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러게 말입니다. 똑 같이 바보같은 놈들이겠지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비유를 드시오?”

“백성을 구호하시는 대왕의 목적이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이웃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위왕이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자 맹자는 덧붙여서 말했다.

“전쟁은 실덕의 지름길입니다. 어떤 군주라도 덕을 잃으면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요.”

가만히 맹자의 꾸짖음을 음미해 보던 위왕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는지 냉소적으로 한 마디를 뱉었다.”

“선생의 그 왕도론인가 인의설인가가 이런 난세에 먹혀드는 이론일 것이라고 생각하오?”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 믿고 펼치는 이론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다는 뜻입니다.”

맹자는 주(周)나라 문왕을 이상형으로 보면서도 먼 스승 공자(孔子)와는 달리 민권주의로 발전해, 군주라도 덕을 잃었을 때에는 혁명으로 군주를 바꾸어야 한다는 혁명론의 주창자였다.

결국 맹자는 정계에서 은퇴해 학문 쌓기에 몰두했다.

(出典 : <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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