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말고도 살고 있네요] 멀구슬나무 얘기

볕이 하도 따뜻해 거리를 걸었습니다. 예년이면 보도블록 사이로 개미자리·별꽃들이 더러 꽃을 피우기도 할 때인데요. 양지 어디에도 푸른 빛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꽃샘바람도 몇 차례 더 불 텐데 꽃은 한 달을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도 이상기후의 기습으로 난데없이 눈보라치지는 않을지 산과 들의 안부가 걱정스럽습니다. 생태학자들이 가이아가 항상성을 발휘하느라 지구온도 자가조절에 들어갔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던 혹독하고 어수선한 겨울이었습니다. 새싹을 피워야 할 땅이 경칩에 붉은 피를 흘린다는 보도를 접하며 '가이아의 눈물'을 떠올립니다. 추위와 폭설과 그보다 더 무서운 구제역 바이러스가 농민들을 울리지 않는 봄이면 좋겠습니다.

도롯가 자투리 공원에는 개나리 가지가 일렁이고 지난 오월 내내 꽃향기를 날리던 멀구슬나무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먹지도 않을 열매를 희롱합니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빈 가지인데 유독 멀구슬나무는 열매를 그대로 달고 있습니다. 독성 때문에 새들이 먹지 않아 이듬해까지 까만 열매가 달려 있습니다. 남부 지역 공원이나 집주변에 흔히 심고 자생합니다. 암갈색의 껍질에 세로로 터진 흔적이 흰점처럼 무늬를 형성하며 봄이면 난형의 긴 잎이 우상복엽형으로 피어나는데요.

전북 고창군청 앞에 있는 200년 정도 된 멀구슬나무. /뉴시스

5월에 연자주색 작은 꽃이 수수이삭처럼 달려 피는데 매우 아름답고 향기가 뛰어납니다. 한 동네에 멀구슬나무 한그루만 있으면 한 달 내내 짙고 그윽한 향기를 즐길 수 있어 정원수로 인기가 높습니다.

여름 한 철 푸른 잎으로 그늘을 만들며 열매는 녹색이다가 가을에 황색으로 익는데요. 한방서는 열매를 고련자·연자·연실·금령자라 하여 약재로 썼다는데요. 열매 달인 물은 포도상구균의 항균작용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껍질은 고련피라 부르며 열매와 함께 이뇨·해열제로 썼으며 요통·산통·협통(脇通)·지통 등의 통증에 달여 마시면 효능이 좋다는데요. 뿐만 아니라 달인 물로 씻어 피부소양증이나 옴·습진도 치료했답니다. 특히 메로신(merosin) 성분이 있어 구충약으로 많이 쓰였답니다.

그러나 열매는 독성이 매우 강해 잘못 복용하면 어지럼증·구토·설사·혀의 마비 등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민간에서 쓰기는 위험하므로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을 따라야 합니다. 열매를 복용하고 위험 증상을 일으킬 때는 달걀흰자나 감초즙·녹두즙·창포즙 등으로 해독하면 완화된다고 합니다.

   
 

봄이 빨리 와 싱그런 생명이 사방에서 솟아나 겨울의 아픔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부모님이 기르는 가족 같은 소 일곱 마리가 무사히 겨울을 났다는 따뜻한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봄길을 활보했습니다. 직박구리 놀다 날아간 자리에 멀구슬나무 열매 하나가 툭 떨어집니다. 하마 그 자리에 잎눈이 트겠지요.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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