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와 '指'의 사전적인 구분은 알려졌듯이 (글을) 가르치는 敎와 (길을) 가리키는 指로 구분된다. 그래서 '교육하다, 깨닫게 하다, 올바르게 바로잡다'라는 뜻은 '가르치다'이고, '방향이나 시각 따위를 나타내어 알리다'라는 뜻은 '가리키다'이다. 그럼에도 '미술교육은 가르키는 것이다'라고 하는 까닭은 창작행위가 과연 가르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 ~ 1995)가 '철학만큼 예술을 생각한다'라고 예술의 위치를 정의 내린 바 있듯이 그림 그리기의 기술은 일종의 훈련(가르치고 연습시켜 기르게 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지는 몰라도 예술창작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보는 행위는 시각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인지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때문에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본다는 의미를 넘어 장소를 읽고 그에 대해 반응한다는 의미를 포괄한다.

그래서 주관적으로 해석되어 시각화되는 예술창작물은 지극히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한때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통해 '그리기'의 작업을 구현했던 시절 어떤 재료로 무엇을 그리는가 하는 것이 어떤 정신으로 그리는가 하는 문제보다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술은 기능의 반대편에 놓여있었다. 예술의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으로 그래서 예술은 무기능이며, 그 자체로서 전복적인 것이고 나아가서는 인류에 대한 질문인 것이었다.

'즉흥'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우연성, 시간성, 음악성(운율), 속도감과 더불어 미술에 관여하면서 추상이 등장했다. 창의성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술교육은 이제 지식을 알려주고 습득시키는 행동인 가르친다는 것에서 '방향이나 시각 따위를 나타내어 알리다'라는 뜻의 가리키는 교육으로 진화해야했다.

아이들에게는 잘 그리는 것보다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미적 감수성을 길러주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하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육성하는 목적으로 수정되었다. 그래서 예술을 즐기면서 기쁨을 누리게 되고, 남과 더불어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미술은 생각이나 느낌을 조형 활동을 통하여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가는 예술로서 그 시대의 문화를 기록하고 반영하는 기능과 역할을 지닌다.

   
 
그래서 이야기가 이미지로 바뀌고, 이미지가 이야기로 변환되면서 미술교육은 뭔가를 가르치기보다 방향이나 목표를 가르켜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통해서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창조적 교육으로 진화해야 하는 것이다.

/황무현(마산대학 아동미술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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