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 사는 김할머니(65)는 조심스럽게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만 달랑 있는 할머니는 딸을 결혼시키고 나서 그런대로 부부끼리 오붓하게 살면 된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지난 연말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지자 할머니는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할머니로서는 누군가의 부양이 절실했지만 딸에게 대놓고 말하기도 뭣하고, 사위눈치도 보였다. 그래서 딸에게 부양의무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할머니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정관념엔 딸은 출가외인이라서 부모부양을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이라고 여기고, 막상 부양을 하려고 생각할 때도 남편의 눈치를 보기 일쑤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법 974조엔 딸과 사위도 분명히 부양의무가 있다고 되어있다. ‘직계 혈족 및 배우자간, 그리고 기타 친족간에도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엔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되어있다. 김할머니는 생계를 같이 해오진 않았지만 직계혈족이므로 마땅히 부양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딸은 출가외인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종종하는데 이는 이미 10년전 바뀐 법을 모르는 말이다. 1990년엔 친족의 범위가 여자·남자 똑같이 ‘양가의 4촌’까지로 조정됐다. 남편쪽 4촌과 아내의 4촌 모두 친족인 것이다.

또 아들이 있는 가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들만 부양의무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호주만이 부모를 부양하는 의무는 이미 사라지고 자녀라면 누구나 공동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네 정서·관습상 아직도 아들에게 많이 기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한 딸도 친정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고, 장남이라고 해서 우선적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부모 부양문제를 의논할 때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가족구성원간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도저히 의견접근이 어렵고, 서로의 입장만 앞세워 부양의 의무를 회피하려고 하면 법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서울은 가정법원에서, 지방은 지방법원 가사부에 ‘부양청구 조정신청’을 할 수 있고, 부양의 정도나 방법 등에 대해선 법원이 조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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