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인의 대화. “난 성희롱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알레르기가 생기려고 해. 우리 회사만 해도 여자사원들이 주로 치마를 입는데 자연히 다리에 눈길이 갈 거 아냐. 아니 쳐다보라고 치마를 입는데 그걸 쳐다보면 성희롱이라고 하고. 여자들도 너무 문제야.”(남)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사실 쳐다보는 것 만으로 성희롱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드물어. 남자라서 여자의 다리나 가슴에 눈길이 간다고 말하면 안돼. 같은 여자들도 노출이 심한 여자에겐 눈길이 간다고. 문제는 쳐다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음담패설과 같은 말로 불쾌감을 주고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있어.”(여)

“아니야, 여자들이 너무 사사건건 트집잡는 것 같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건 그렇고 요즘 내 옆의 김대리가 나를 자꾸 이상한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기도 해서 너무 기분이 나빠.” “뭐· 도대체 김대리가 어떤 놈이야·”

성희롱이 여전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성부 전신 여성특별위원회가 지난 27일 발간한 <2000 업무백서>에 의하면 총 남녀차별 신고건수중 절반(54.5%)이 성희롱 시정신청에 대한 내용이어서 이를 뒷받침해준다. 백서에 의하면 성희롱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고, 사기업체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 한국 여성노동자회 협의회가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의 지난해 상담사례조사에서도 전체 상담사례 172건중 65.7%가 20대 직장여성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입사한지 1년 미만인 20대여성이 집중적인 성희롱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성희롱 유형이 신체접촉(54.5%), 언어 성희롱(34.9%) 순이고, 가해자도 사업주(30.8%)나 상사(55.8%)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볼 때 성희롱 문제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의 권위적인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행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법은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징계명령이나 시정권고를 내리도록 되어있기는 하지만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 실효를 거두기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어서 법규정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앞의 예처럼 내가 사귀는 여자, 내 아내, 내 딸의 문제라고 여기면 남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나와 특별히 연관이 없는 불특정 다수 여성의 문제라면 ‘여자들이 그런 빌미를 제공했을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정작 성희롱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정립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 일선 사업장에 교육을 나가본 상담원들의 주장이다. 경남여성회 부설 성가족상담소의 배현주 상담원은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되어있는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나가보면 1~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모든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리고 교육을 받고나면 고정관념이 다소 바뀌기도 하지만 한번의 교육으로 100%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성희롱이란 99년 7월 1일부터 실시되고 있는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고 있다. 이 법률에서 성희롱을 남녀차별로 규정하고 법적대응을 강화함에 따라 성희롱이 더 이상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에 법적인 보호와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법률 제 2조 2호에 따르면 성희롱이란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지위를 이용해 성적언동으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인 요구에 대해 불응했을 경우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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