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처럼 생긴 나라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인 피렌체(Firenze)는 인구 40만 정도의 도시다.

이탈리아어로 플로렌스라고도 하는데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233km, 아르노강의 양쪽 강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도시 변두리의 아르노강가 언저리 일대 저지대는 신흥공업지대로 상공업이 중심을 이룬다. 피렌체는 근대적인 대도시로 아르노강 언저리의 교통로와 아펜니노 산맥을 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문화전성기는 15세기다. 15세기 초부터 메디치가(家)가 권력을 잡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문화의 중심으로 황금시대를 맞았다.

이탈리아는 중세이후 르네상스·바로크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전역에 음악적인 주도권을 행사했던 나라다.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들이 유럽전역에서 활동했으며 이들의 예술행위는 ‘이탈리아 양식’이라는 하나의 예술장르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 중에도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오페라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모여든 예술인들은 메디치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예술혼을 불태웠다. 오페라 탄생의 모태역할을 했던 ‘피렌체 카메레타’는 음악가·화가·작가 등이 모여 메디치궁정의 후원아래 오페라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곳에 있는 피티궁정에서는 1656년 페르골라극장이 건축되어 멜리나의 〈라탄치아>가 개막 공연되었고 베버의 〈자유의 사수>가 무대에 올려져 성황을 이뤘다. 1828년에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기술자를 초빙해 피아노 제조회사가 설립돼 기악음악이 발달하는 초석이 된다. 이외에도 이탈리아에서는 최초의 필하모닉 협처가 창립되어 고전주의 음악, 특히 기악음악이 널리 번창한다.

1890년 1월30일 차이코프스키는 피렌체에서 ‘스페이트여왕’에 대해 작곡적인 상상에 몰두하는데 이때의 생각이 고국으로 돌아와 탄생시킨 현악6중주곡인 〈피렌체의 추억〉이다. 쇤베르크의 〈정화된 밥〉도 이곳 피티궁정내의 비앙카홀에서 알프레도 카셀라의 지휘로 연주되곤 했는데 푸치니도 이 음악을 듣기 위해 피렌체를 방문하기도 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권 국가들의 당시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심은 지금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와 같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에 누렸던 음악적 영향력은 누리고 있지 못하다.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된 후 로마로 음악문화가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0년 실내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음악의 친구들(Amici della Musica)’이 조직돼 1923년 첫 콘서트를 갖는가 하면, 1928년에는 근대적인 교향악단을 창단하는 등 옛 명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피렌체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에 음악제가 열린다. 세계 유수의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초연작품을 연주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오이디푸스 왕〉도 이탈리아에서 초연됐고, 달라피콜라의 오페라 〈야간비행〉(1940)이 초연된 곳도 이탈리아다.

특히 이런 공연에는 브루소 발터, 푸르트 벵글러, 미트로 폴리스, 로진스키 등 당대 거물급 지휘자가 객원지휘를 맡았다.

이곳에는 궁정부속음악학교로 출발한 에지오 음악원이 1923년 루이지 케루비니의 이름을 따 ‘케루비니 음악원’으로 거듭났다. 이 음악원의 도서관에는 메디치의 피티궁전에 있던 악보는 물론 부속악기 박물관에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메디치의 주문으로 제작한 비올라도 소장돼 있다.

이렇듯 피렌체는 오페라의 발상지로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지나 지금까지도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악도시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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