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 안주로 소주 드시던 선친그 맛 경험하니 미안함에 목메어

삐이익 덜커덕.

수습시절, 회식을 하고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 부모님 깨실까 몰래 들어가려 대문을 열었는데 새벽녘이라 그런지 소리가 꽤 컸다. 몰래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순이가. 들어왔나?"

아버지의 목소리다. 아버지는 방문을 살짝 열고 딸이 왔는지만 확인하셨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술잔을 드시는 아버지. 다 큰 딸이 자정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았으니 속이 탔을 만도 했을 터다. 그래도 꾸중 한번 안 하고 말없이 방문을 닫으셨다. 온 거 확인했으면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시 소주잔을 드셨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마른 생선이 눈에 들어왔다. 과메기다.

선친은 이맘때쯤이면 과메기 두서너 마리를 사서는 잘게 썰어 신문지에 싸 놓으셨다. 밤잠을 설칠 때면 신문지에서 두서너 점만 꺼내 소주 옆에 놓으셨다. 혼자서 과메기 한 점을 김에 싸 안주로 드시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린 맛밖에 나지 않는 저 생선을 무슨 맛으로 저렇게 드실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안주 좀 많이 드시면 될 텐데 속 아프게 왜 저리 잘게 썰어 드시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술안주로 과메기를 찾게 되었다. 오묘한 맛과 느낌 때문이다.

얼마 전 먹었던 것은 구룡포 것이다. 표지엔 갓 잡은 신선한 청어를 섭씨 영하 10도의 냉동상태로 두었다가 12월부터 바깥에 내다 걸어 밤에는 냉동을, 낮에는 해동을 거듭해 수분 함유량이 40% 정도 되도록 말린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비리다는 청어라는 것밖에.

과메기 한 점을 미역에 싸서 입 안에 넣었다. 과메기는 쉽게 씹히지 않았다. 몇 번 곱씹어야 목으로 넘어갔다. 씹으면 씹을수록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계속 느끼고 싶지만 이내 그 절정의 맛은 사라지고 쓴맛만 남았다. 그때 들이켜는 소주 한 잔은, 과메기의 쓴맛을 목으로 넘기고 이내 타는 속을 적셨다.

같이 먹으면 좋다는 생미역과 파릇한 미나리는, 어떻게 보면 과메기의 본 맛을 잊게 하고자 덧붙인 것. 번지르르하게 모양새를 만들어주고 맛을 더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남는 건 과메기의 비릿한 그 맛이다.

올해는 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섭다. 이맘때쯤이면 먹다 남은 소주와 신문지에 꼬깃꼬깃 싸놓은 과메기를 꺼내 한잔하셨을 아버지.

왜 그땐 아버지에게 먼저 한 잔을 권하지 못했을까? 왜 그땐 과메기 한번 실컷 드시게 하지 못했을까? 과메기를 씹고 있자니,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곱씹어졌다. 과메기의 쓴맛이 목에 걸렸다. 소주 한 잔을 넘겼다. 속이 좀 나아지는 듯했다.

"아버지는 이 맛에 과메기를 드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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