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관심이 옹진반도에 몰려 외국에서는 한국의 상황이 마치 교전 중인 것처럼 보도되는 모양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중국작가들이 입국을 미루면서 자꾸 안전을 묻는다. 지난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의 연평해전을 겪었던 서해 최북단에 있는 섬 연평도에는 지금 K-9자주포와 다연장로켓, 대공미사일 천마, 대포병 레이더 등이 교전에 대비하고 있고, 이지스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중무장한 F-15K 전투기도 즉각 대응타격에 대비하고 있다. TV에서는 이런 상황을 마치 게임 중계하듯이 자료화면을 보여 가면서 중계를 하고 있는 탓에 중국작가들의 안전보장 요구가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는 1937년 4월 26일 월요일, 4시 40분부터 7시 45분까지 20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중량 1000파운드에 달하는 소이탄과 고성능 폭탄을 투하, 654명이 죽고 889명이 부상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 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館)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를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하고, '게르니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전쟁은 인류사의 가장 큰 사건들이었다. 단지 거대한 살육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면서 미술뿐만 아니라 사상의 흐름과 문학 등 문화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요즘에야 조금 의미가 다변화되기는 했지만,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소명이 시각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의미를 더하자면 해석과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는 기록화를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고, 인간 본성의 문제를 해부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작품 중에서 전쟁과 관련된 대표작을 꼽자면 역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한국에서의 학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케테 콜비츠(Kathe Kollwiz)의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와 같은 반전포스터도 전쟁미술이라 할 수 있고, 독일의 한스 홀바인이나 프랑스의 쿠르베, 스페인의 고야 등도 전쟁이나 정치적 상황을 그림에 담았다.

그러나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지만, 그 아픔을 상기할 만한 작품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몇 점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단순한 소재주의 형식이라는 평을 듣고 있을 뿐이다. 물론 소재주의 미술의 팽배는 현실인식의 결여를 초래해 결국 순수예술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내전이든 국제전이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발전하는 전쟁을 원하는 사람도 물론 없을 것이다. 인류 최대의 적인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자기검열과 침묵의 카르텔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면, 매카시선풍의 피해에서 복원되지 못한 두려움 탓일 것이다.

/황무현 마산대학 아동미술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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