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31) 두루미와 학

고스톱 솔광 1월에 고도리로 안 쳐주는 새는 무슨 새일까? 연하장에 제일 많이 나오는 새는 무엇일까? 500원 동전 그림에도 나오고 지리산 청학동, 마산 무학산, 고성 송학동에도 있는 새는 무슨 새일까? 할머니 장롱에도 있고 조선 문관의 관복에도 그려진 새다. 1000마리를 접어야만 소원이 이뤄지는 새. 바로 학(鶴)이고 두루미다.

◇학(鶴)과 두루미 = 학은 한자말이고 우리말로 두루미라고 한다. '뚜루 뚜루' 운다고 두루미라 한다. 일본서는 '쭈루 쭈루' 운다고 쭈루라 한다. 한자말 학은 참 많다. 무학소주, 마산 무학산, 고성 송학동, 마산과 고성의 학동, 지리산 청학동, 삼천포 학섬까지 두루 쓰이지만 두루미라는 우리말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노래에만 나오고 그리 많지 않다. '여우와 두루미'라는 동화에 나오지만 삽화를 그릴 때 두루미보다는 백로나 황새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학섬이라고 찾아보면 학은 없고 백로가 많다.

어미 두루미(왼쪽 위 )가 고기를 잡아 새끼에게 먹이고 있다.

◇왜 1000마리를 접어야만 소원이 이뤄질까 =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전영록의 종이학 노래처럼 모두가 종이학을 접었다. 학을 접으며 왜 꼭 1000마리가 돼야 소원이 이뤄질까?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학 접기는 일본에서 시작된 믿음이다. 일본에선 전쟁에 나간 군인에게 편지를 보낼 때 종이학을 같이 보냈다고 한다. 종이학 1000마리를 받은 군인은 죽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2차 대전 때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방사능 피해를 입은 소녀가 1000마리 종이학을 접으며 살고 싶은 꿈을 빌었다는 이야기가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면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종이학 1000마리를 접기 위한 정성과 노력도 필요하지만 학은 천년을 살면 천년학이 되는데 청학이라고 부른다.

◇왜 솔광이 1광이 되었을까 = 화투에서 왜 솔광이 1광이 되었을까? 하고 골몰히 생각해보면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본다. 생태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 믿음과 속신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월의 계절이다. 1광은 음력 1월이다. 추운 겨울 찾아오는 철새 중 가장 귀한 손님이 두루미고 겨울이 돼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다.

두 번째로 문화적인 이유다. 유불선 종교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새가 바로 두루미다. 신선이 타고 선비가 함께 하는 새다. 절에 가면 탱화에서 두루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 으뜸으로 치는 나무도 바로 소나무다. 그래서 소나무 송과 두루미 학을 합쳐 송학이 된다. 바로 1광 그림이다.

세 번째로 믿음과 속신인데 두루미는 장수와 입신양명과 부부해로를 상징한다. 조선시대 벼슬이 높은 문관의 관복에는 두루미가 그려져 있다. 두루미 같은 선비가 되라는 뜻인데 관복의 그림이 되다 보니 입신양명과 출세를 뜻하게 됐다(一品當朝 당대 조정에서 일품 벼슬에 오르다). 두루미는 부부 사이가 좋아 부부가 함께 오래 살라는 뜻으로 두루미 두 마리를 그리기도 했다. 부모 베개와 이불, 장롱과 수저에 그려진 새도 두루미다. 거북이와 함께 오래 사는 십장생 중 하나가 두루미다. 입신양명하고 오래 오래 부부해로 하시라는 기원이다.

왼쪽부터 학이 중심 이미지가 되는 무학소주 60년대(위)·70년대 상표. 덕성여대 박물관 소장 쌍학흉배,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 학이 그려진 한국화투 솔광. 흉배는 조선시대 관복의 가슴이나 등에 붙이던 수놓은 천을 이른다.

◇학은 소나무에 앉지 않는다 = 학은 습지에 사는 새고 둥지도 습지에 풀로 만든다. 소나무에 앉을 일이 없다. 비슷한 백로나 왜가리가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그러면 왜 학과 소나무를 함께 그렸을까? 생태맹이라 학의 생태를 몰라서는 아니다. 문화적 약속이다. 학수송령(鶴壽松齡 학처럼 천년, 소나무처럼 백수를 누리시라는 기원)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에 오르지 않는 두루미를 소나무와 함께 그렸다. 소나무는 겨울과 새해를 상징하고 두루미는 장수와 입신양명 부부해로를 기원한다. 화투짝 솔광 그림과 연하장의 두루미 그림은 그런 면에서 같은 뜻이다.

◇살아 있는 야생 학은 전 세계 3000마리 = 생활 가까이 이렇게 많은 학이 있지만 살아 있는 야생 학은 전 세계 3000마리밖에 안 된다. 올 겨울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이 파괴돼 그나마 찾아오던 두루미가 많이 줄었다. 이러다 후손들은 두루미를 멸종된 공룡처럼 이야기에만 나오는 상상 속의 새, 전설 속의 새로 알게 될까 두렵다. 연하장이나 500원 동전, 고스톱 화투짝에서만 보는 상상 속의 새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 학처럼 목을 빼고 학이 날아오길 학수고대(鶴首苦待)하지 않길 기원해 본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숫자밖에 남지 않은 두루미에게 어떤 세 가지 소원을 빌어야 할까?

/정대수(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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