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도 울고갈 창원 진해구 토종맛 삼형제가 굽는 '위대한 유산'
삼형제(조성천·조성일·조성래)는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았다.
'파티쉐 미진 육대점(1972∼)'과 '진해제과(1947∼)'는 30년 넘게 빵을 구웠던 부친이 6년 전 남긴 유산.
부친이 돌아가신 후 삼형제는 '파티쉐 미진 석동점'을 하나 더 열었다.
현재 삼형제는 '벚꽃빵'을 개발해 진해만의 특징을 살린 빵집으로 이어가고 있다.
큰아들 조성천씨(진해제과)는 영업부장을, 작은아들 조성일씨(파티쉐 미진 육대점)는 기술부장을 맡아 세 빵집의 운영과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막내인 한국제과기능장 조성래씨(파티쉐 미진 석동점)는 각 동네정서에 맞는 빵과 진해만의 특징을 지닌 빵을 생산, 개발하고 있다.
이들이 굽는 빵은 신선하면서도 지역의 색을 잃지 않는 것이 매력. 세 빵집은 각각 빵 굽는 공장을 운영하며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판다. 남는 양은 서비스로 단골에게 푸짐하게 나눠준다. 지역의 색이 있고 정이 있는 빵집. 체인점 빵집의 번성 속에서도, 이 빵집이 지금까지 번성을 누리는 비결이다.
◇우리밀빵부터 벚꽃진액 넣은 벚꽃 빵까지 = 얼만 전 우리밀로 만든 빵을 개발한 세 형제. 이 빵은 중앙시장이 있는 파티쉐미진 육대점에서 선보였다.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 건강을 생각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이라 반응을 엿볼 수 있기 때문.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시금치롤케이크는 시장을 오가는 어르신들에게, 초코롤케이크는 인근 고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 우리밀로 만들어 재료비는 두 배지만 빵 값은 비슷하다. 인근 지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서다.
"아이나 어르신들은 건강을 생각하지만 비싸게 빵을 팔면 부담스러워 하세요. 오히려 마진을 조금 남기더라도 지역민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게 가격을 설정하는 게 맞죠."
지난해 진해군항제 때 벚꽃 빵을 선보여 화제가 됐던 삼형제. 벚꽃빵은 벚꽃진액을 팥소에 넣어 벚꽃향이 살짝 풍기는 게 특징이다. 진액의 공급이 한정돼있어 겨울엔 대량주문만 받아 배달하고 있다고. 두 달 전 선보인 벚꽃케이크 역시 벚꽃진액을 넣고 반죽하고 그 위에 견과류를 얹어 만든 진해를 닮은 빵. 삼형제가 머리를 맞대 개발한 빵에는 '진해와 지역민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있었다.
◇진해제과만은 '진해제과'인 까닭은 = 세 빵집 중 가장 오래된 진해제과. 1947년 만들어진 이 빵집은 부친이 1980년에 이어받은 빵집이다. 해군사관학교 바로 옆에 있는 '진해제과'의 빵은 조금 다르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튀겨낸 팥빵, 큼직한 도넛 등 '추억의 빵'이 눈에 띈다. 추억 삼아 오는 옛 진해지역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덩치 큰 빵'도 유달리 많다. 군인들의 입맛에 맞춘 빵이다. 이곳은 주말이면 생도들이 쉬고 가던 쉼터 같은 곳. '파티쉐 미진'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진해제과만은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까닭은 진해지역민과 단골들의 요구 때문이다.
"물론 명칭을 통일하면 우리 삼형제가 꾸리는 빵집이 더 알려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곳의 어르신들과 옛날 기억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곳은 '추억 같은 곳'이죠. 진해제과라는 이름이 없으면 이곳을 찾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남겨뒀죠."
◇지역민의 정서에 푸짐한 정을 담아 = 세 빵집은 체인점과 겨뤄도 손색이 없는 그만의 특징이 있기에 체인점의 경쟁에도 당당하다.
여름엔 팥빙수를, 밤엔 생일축하파티가 펼쳐지는 가정집과 술집으로 케이크를 배달한다. 진해는 용원을 제외하면 길 끝에서 끝까지 빠르면 10분이면 되는 거리라는 점에 착안한 것.
어디를 가나 똑같은 체인 빵집과 달리, 같은 진해지역이지만 세 빵집 모두 그 동네 지역민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도 특징. 어디까지 똑같은 빵이 아닌, 세 지역 유동인구의 성향을 고려한 빵을 개발해 선보이는 것이다. 젊은 층이 많은 파티쉐 미진 석동점은 '카페형'으로, 시장이 있는 파티쉐 미진 육대점은 '건강을 담은 빵'으로, 군인들과 옛 사람들의 추억이 있는 진해제과는 '추억의 빵'으로 공략하고 있다.
삼형제가 앞으로 만드는 꿈은 크진 않지만 진솔했다.
"진해만 해도 지역마다 입맛이 다 다릅니다. 동네 입맛을 고민하고 그에 맞는 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하고, 우리 삼형제가 빵을 만드는 원칙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