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진흥재단, 신문사 주도 대안협의체 제안사실상 사업 중단…800억 들인 인프라 날릴 판

"현재 한국의 신문 판매 및 배달시스템은 개별신문사뿐 아니라 전체 신문시장 차원에서 볼 때도 매우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구조이다. 신문사 재정의 80% 이상을 광고수익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개별 신문사들로서는 지면과 논조의 차별화, 저널리즘의 질적 제고를 통한 독자층 형성보다는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를 통해 구독자 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광고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결과적으로 독자확보를 위한 출혈경쟁이 극심해지면서 판매와 배달에서 고비용 비효율 체제가 고착되었다. 제살깎기식 판매경쟁이 관행처럼 되었다."

2005년 7월 당시 한국언론재단 김영주 연구위원이 한 언론에 '신문유통원' 설립과 관련해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

당시에도 찬반논란은 뜨거웠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기관이 유통을 대행할 경우 정부가 신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문유통원 설립에 반대했고, 소규모 신문사들은 부실한 자체 배달조직을 보완할 수 있어 자생력을 갖출 수 있고 인건비·운송비 등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신문 유통질서 확립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대부분 신문업계에서는 설립을 반겼다.

신문공동배달제 잠정 중단에 따라 오는 31일 문 닫는 언론진흥재단 경남센터. /이혜영 기자

신문유통원은 이처럼 개별 신문사들의 과도한 비용지출과 비효율적 경쟁을 막고 국민의 폭넓은 언론매체 선택권을 보장하고자 2005년 11월 설립된 법인이다. 이후 2006년 4월 1호 센터인 광화문센터가 문을 열었고 2010년 현재 700여 개의 센터가 설립, 도내에는 46개(민영센터 25곳·소형센터 21곳)의 센터가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재단 산하 신문유통원 직영 공동배달센터에서 추진해오던 '신문위탁배달사업'을 오는 31일로 종료될 예정임을 관련 언론사와 센터에 통보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7월부터 꾸려온 신문유통사업TF는 최근 정부 직접 지원의 현행 신문공동배달제도를 잠정 중단하고, 신문사 주도의 대안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는 최종보고서를 채택한 것이다. TF는 현재의 공배제가 제도 설계가 미흡했고 신문 유통시장의 현실을 적합하게 반영하지 못했으며, 주요 신문사들이 공배 제도에 동참하지 않음에 따라 작은 신문사 지국 중심으로 운영됐으며 인프라 구축이라는 정해진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양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정책 효과에 대한 관리·감독과 질적 개선 노력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경남센터 강도석 관리팀장은 "전국에 신문유통원 직영센터가 22곳인데 올해 말까지만 유지되고 없앤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비정규직이라 당장 직장을 잃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조중동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노무현 정권 시절 조중동 신문이 매출액, 발행 부수뿐만 아니라 판매 시장에서도 월등히 우월한 위치에 있어 타 신문과의 양극화를 해결하려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다 보니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신문산업이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을 우려했다. 2005년 신문유통원 설립 당시 조중동은 '친여신문 지원을 위해 국가예산을 낭비한다'며 강경하게 반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유통원이 초기에 양적 확장에 매달린 것도 맞지만 유통원 관리·감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문화부와 재단이 부실운영에 대한 반성보다 일개 센터의 잘못으로 몰아가면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영센터에서 지국을 운영하고 있는 한 지국장은 "영세한 지국을 지원해주어서 배달 오토바이, 컴퓨터, 포장기, 밴딩기를 대여해서 쓰고 있는데 당장 사무실을 폐쇄한다고 하니 막막할 뿐이다"며 "여유도 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이달 안으로 정리를 해야 한다고 하면 사업장을 구하고 모든 기기를 다 사야 한다는 말인데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신문유통 체계가 잡혔다고 할 수 없다며 공배사업에 한계는 있었지만 여론 다양성과 영세한 지국을 위해서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당장 배달위탁 재계약이 어려운 소규모 신문사들은 신문유통원이 아닌 각 센터와 개별 계약이나 다른 지국과의 계약을 알아보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이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위탁계약 종료 이후에도 민영공동배달센터 활용과 공동배달인력 운영 등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 최대한 협조할 것을 밝혔다.

그럼에도, 정부가 8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구축한 인프라를 없던 일로 돌리는 것은 올바른 신문유통체계보다 본사가 직접 운영·관리하길 원하는 조중동의 편에 섰다는 지적에서는 사실상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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