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어! 왜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거요.”
“디미트리어스와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라이센더와 함께 살기를 고집하면 허미어, 교수형과 수녀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네.”
“디미트리어스, 왜 이 헬리너는 돌아보지도 않아요.”
오는 28일 경남 대표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제5회 전국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는 제일여고 연극부(부장 박인지.지도교사 최수진).
16일 오후 7시, 무용실에 부원 20명이 모여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연인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각색한 <한여름밤의 꿈>이 1시간 10분 동안 숨돌릴 틈도 없이 펼쳐진다.
라이센더를 사랑하는 허미어와 허미어를 사랑하는 디미트리어스, 그런 디미트리어스를 쫓아 다니는 헬리너. 허미어의 아버지는 디미트리어스와의 결혼을 딸에게 강요하고 허미어는 한사코 거부한다.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는 라이센더가 헬리너를 사랑하게 만들어 헬리너와 허미어, 디미트리어스와 라이센더가 격렬하게 다툰다. 하지만 퍼크가 사태를 되돌려 놓자 헬리너는 디미트리어스와, 허미어는 라이센더와 바라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제3자의 힘으로 함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사랑이오. 진정 행복해 하는 사랑하는 저 두 쌍의 젊은이를 보시오. 억지로 떼어놓으려던 내 판단이 잘못된 것 같구려.”
7월부터 쉬지 않고 연극 연습이 계속되면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물론 연기력과 자기 표현력이 좋아진 것은 당연하다.
“갈수록 연극의 맛을 느끼는지 배역에 맞는 분위기가 묻어나요. 남자 역은 남자다운 맛이 나고 연인들은 표정과 대사에서 사랑하는 감정을 절절히 나타낼 수 있게 됐어요.”(최수진 지도교사)
덕분에 8월 18일 열린 마산 청소년연극제는 제일여고에 단체 대상을, 요정 여왕을 맡은 박현희양에게 우수연기상을 안겨줬다.
이어서 9월 13일 통영에서 있었던 경남 청소년 연극제의 대상도 받아 전국 대회 출전권을 따냈으며 2학년 정희선양의 최우수연기상, 3학년 이지영양의 우수연기상과 지도교사상까지 함께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높아진 연기력과 상 받는 기쁨만 주어진 것은 분명 아니다.
“청소년답게 작품 전체를 코믹하게 꾸몄었어요. 그런데 중심 기둥은 없고 잔재미에만 휩쓸린 것 같아 캐릭터를 새로 잡으려니까 힘들었어요.”
“행복한 순간은 짧고 어려운 과정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도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어려움을 참고 견뎠는데….(갑자기 울음이 복받쳐 고개를 숙였다) 배우들이 무대에 있는 동안 스태프는 진짜 고생하면서 많이 아픈데도 참고 했어요. 배우들 빛내줘서 고맙다고 말 한 마디 못해 참 미안합니다.”
“주연보다 조연이 잘 할 때 연극이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누구나 어떤 역할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자기 역할 중요하다는 걸 다 아니까, 단체로 하는 거니까 자기 하나 빠지면 연극이 안 되죠. 책임감이나 인내심, 남을 위하는 마음도 저절로 생겨나더군요.”
위기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8월 중순 마산대회를 마친 뒤에 한 명이 전학을 갔어요. 부모가 이사하는 바람에 일찌감치 그만둬야 했는데 대회 때문에 말없이 계속한 겁니다. 또 통영 대회를 앞두고 한 명이 갑자기 수술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팀 같으면 출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제일여고 연극부이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죠.”
예비 배역을 마련해 두는 독특한 시스템 덕분에 공백을 메울 수 있었는데, 하지만 연습 과정에서 배려하는 마음과 책임감.인내를 익히지 못했다면 어림도 없었다는 게 제일여고 37회 졸업생인 지도교사 최수진씨의 말이다.
“공부시간 줄여가며 한 거니까 전국대회 상도 받으면 좋지요. 하지만 예술의 전당에 같이 선다는 게 너무 좋고 경남을 대표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큰 욕심은 없습니다.”
대학입시 가산점까지 주어지는데 어찌 상 욕심이 없겠냐만,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하는 말이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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