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말고도 살고 있네요] 기러기의 겨울나기

경남 최대의 철대도래지 주남저수지에 가면 기러기들의 요란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도 시끄러워 마을주민들은 잠을 설친다고 한다.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새끼를 키우고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날아왔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환대를 받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지금도 이렇듯 기러기는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철새이다. 아동문학작가 윤석중 선생은 기러기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생략)

적어도 윤석중 선생은 기러기들의 고단한 삶을 알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생태적 특성, 가을에 우리나라에 찾아오고 갈대가 자라는 습지에서 서식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창원 동읍 주남저수지에서 날갯짓하는 기러기들. /이찬우

◇우리는 또 기러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옛날 선인들은 신혼 부분에게 기러기 한 쌍을 선물하곤 하였다. 금실 좋게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뜻이었다. 사실 기러기는 부부의 연을 맺으면 함께 오래 살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옛 선인들이 기러기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습지가 많았던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세력을 떨쳤던 가야 유물에는 기러기 모양 토기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수천 년 전에도 우리 지역은 기러기들의 천국이었던 모양이다.

최근에는 부인과 자식을 멀리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아버지들을 기러기 아빠라 부른다. 왠지 씁쓸한 세태를 반영하는 단어지만 현 세대에도 기러기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주남저수지의 기러기를 찾아보는 여유를 가져 보자 = 세계적으로 기러기는 14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9종이 기록됐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기러기는 큰기러기(Bean Goose)와 쇠기러기(White-fronted Goose) 두 종이다. 주말에 여유가 생긴다면 주남저수지의 겨울 주인 기러기를 만나러 가 보자.

   
 

주남저수지 앞 농경지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낙곡을 먹는 기러기들을 볼 수 있다. 안전하게 겨울을 지내고 번식지인 러시아 지역으로 돌아가야 건강하고 예쁜 새끼를 키울 수 있다.

원래 기러기의 땅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된 땅에서 기러기들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우리들이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해 볼 시점이다.

/이찬우(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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