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예전보다 지금이 살기 좋은 것만은 틀림없다. 특히 5년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유럽에서의 우리나라 인지도와 경제력, 국력을 그들의 반응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유학생활에서 외국과 우리나라가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사실도 몸소 깨달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가 갖는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는 늦은 밤에도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고, 배달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세상의 어떤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 중 하나일 거다. 달리 표현하자면 밤에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가 되겠다.

우리나라 사람은 근면 성실하다. 이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자랑거리이며,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자원을 대신해 꼭 필요한 국가 경쟁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러한 일에 대한 근면 성실함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것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잘살 건 못살 건, 많이 배우건 못 배우건 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척도는 부의 축적에 집중돼 있다. 분명히 예전보다 잘 살지만 과거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건 결코 아니다.

문득 유학시절의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초겨울이었다. 바깥엔 눈이 오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였다. 늘 하던 대로 연주를 보고자 연주회장 로비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적어도 80세는 훌쩍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연주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손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저 아름답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 모습을 가르쳐주는듯한 짜릿한 찰나였다. 공연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유로운 모습과 행복이 넘치는 밝은 표정, 뭔가 알지 못할 여유로움,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그런 여유인 듯하다.

우리는 1년 중에 공연장을 과연 몇 번이나 갈까? 나는 작곡가이다. 내 직업이 음악이니만큼 다른 사람과 비교할 만한 사항은 아니지만, 대학에서의 교양강의 시간이나 전공강의 시간에 가끔 강조하는 말이 있다. "식당에선 굶주린 배를 채우고, 공연장에 가서는 우리 마음의 공간을 채우자"라고.

   
 
바쁘다는 것이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문화적 삶을 가지지 못하는 자신을 한 번쯤은 뒤돌아볼 때인 듯하다. 우리 지역의 성산아트홀, 3·15아트센터, 경남문화예술회관, 김해문화의전당 등 많은 공연장을 둘러보라. 많은 공연과 전시회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예술은 특정인들의 사치가 아니라 인간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시대적 공감대다. 지금이라도 나의 용돈 일부와 시간 일부를 예술 향유에 투자해 보는 건 어떨까?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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