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말고도 살고 있네요] 산사나무 이야기

가을 산 숲은 무척이나 분주합니다. 길섶에 앉아 숲의 소리를 들어보면 여름 숲에서는 곤충이나 새들이 내는 생명의 소리로 활기차지만 가을 숲은 조용하고 고즈넉하면서도 아주 소소한 움직임의 소리들이 마음을 붙듭니다. 나뭇잎 지는 소리, 이파리들끼리 부딪치며 말라가는 소리 툭, 열매 떨어지는 소리, 가끔 칡넝쿨 아래 도토리 묻는 다람쥐 소리, 참새들 씨앗 따먹는 소리. 소리들의 작은 화음들이 가을 숲이 내는 소리의 향연이 아닐까 합니다. 억새꽃은 달빛처럼 희고 햇살처럼 눈부십니다. 꽃 한 송이 나뭇잎 하나 모두 자연의 현신들입니다. 가을 숲은 바쁜 일상이 빼앗아 가버린 영혼의 소리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듭니다. 사람들의 발길 드문 오솔길에서 자연의 한 조각으로서 숲과 만나고 돌아오면 온 몸 가득 들어찼던 도시의 때를 벗은 듯 홀연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산기슭 가에 빨간 열매 가득 달고 낙엽을 떨구는 산사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아직은 물기 성한 열매 하나를 입에 넣고 시큼탑탑한 맛에 빠져 봅니다. 조금 더 지나 초겨울이 되면 아마 단맛이 깊어지고 떫은맛도 줄어들 것입니다. 산사나무는 주로 산기슭 양지 쪽에서 잘 자라는 갈잎 큰키나무로 5월에 조팝 꽃처럼 하얗고 작은 꽃을 눈송이처럼 피워냅니다. 요즘은 아름다운 꽃을 즐기기 위해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으며 더러는 가로수로 심어 놓은 곳도 있습니다.

산사나무 열매.

옛날 간식이 귀하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좋은 먹을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낙엽이 지기 전 붉게 익은 열매를 따서 납작하게 썰어 말려 약재로 많이 쓰는데 '산사인'이라 하여 어혈을 없애고 혈액의 흐름을 돕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전하여집니다. 뿐만 아니라 소화기계 비위를 따뜻하게 해주어 고기 먹고 체했을 때나 복통·구토·설사·위산과다·만성장염의 병증에도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또 동물 실험에서 혈압을 강하시키며 혈관 확장의 효과도 드러나,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기도 한답니다. 꽃과 열매가 예쁠 뿐만 아니라 약재로서도 더 없이 좋은 우리 식물입니다. 열매 10g에 물 반 되를 넣고 달인 액을 반으로 나누어 아침 저녁으로 마시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많이 먹는 것이 안 좋으므로 주의해야 하며 특히 생것을 많이 먹으면 치아를 상하게 하기도 하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잘 말려서 물에 달여 드시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잘 길러온 곡식들을 갈무리하는 농부처럼 가을 산 속의 나무들도 부지런히 나뭇잎을 떨구고 익힌 열매를 말립니다. 햇살 받은 단풍잎은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저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는 한 번쯤 가을바람처럼 흔들리며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보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산사나무의 붉은 열매처럼 붉게 지는 노을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박덕선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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