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귀걸이 한 요양성직자" 정년 퇴직후 치매어르신 돌봐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신구를 닮은 외모, 호는 장자방,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남자, 치매할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 남자. 창원시 북면 삼원효도마을에서 요양보호사 팀장으로 있는 권삼범(59) 씨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지난 17일 경남도민일보 주최 부마민주항쟁 기념 팔용산 걷기 대회에서다. 남자임에도 큰 귀걸이에 여성스러운 복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그는 경남미용봉사회 회원으로 기념품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독특하다'는 생각에 명함을 받았는데 명함에 '호: 장자방'이라고 적혀있다. 점점 궁금해진다.

평범한 일반인의 모습을 한 권삼범 씨.

며칠 후 만남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평상시에도 그런 복장은 어렵겠지, 평범한 사람이네'라는 인상과 달리 이야기를 나눌수록 '대단한 사람이네'라고 생각이 변한다.

남을 옆에서 돕는 게 더 좋다는 권 씨는 천하의 '장자방'으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 그의 현재 직업은 요양보호사이다. 사흘 버티는 실습생이 없다는 치매어르신들 돌봄을 2년 전부터 하고 있다.

"성직자에는 스님도 있고, 목사, 신부님도 있지만 요양보호사들도 성직자예요. 성직자들 중에서도 으뜸이 요양성직자라고 생각해요. 천직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지요. 어른들 모시는 일 잘 할 필요없어요. 머리 한번 짚어주고,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그러면 돼요."

2년을 일하면서 몸으로 힘든 적은 많았지만 어른들에게 화 한번 낸 적이 없다고 한다. 변을 잘 못가리는 노인들의 '실수' 때문에 나는 냄새가 3일만에 고소한 냄새로 느껴지더라는 그다. 기저귀를 채워주면 벗어 던지고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는 어르신에게 다가가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어르신 오늘도 재미나게 해봤네~" 이렇게 웃고 씻겨주고 안아주면 아기가 되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단다. 정말 천직이다.

그는 2007년 LG전자를 정년퇴직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LG전자에서 32년간 근무하면서 야근을 한 횟수는 26년이다. 퇴직 후, 삐뚤어져있는 척수를 스스로 교정하기 위해 배운 것이 스포츠마사지, 경락, 카이로프랙틱, 벌침 등이다. 자신이 효과를 보자 이웃에게 나누자는 생각에 이르렀고 봉사활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빨간 여성 옷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는 권 씨(사진 왼쪽).

"6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1년을 꼬박 창녕에 있는 어머니 묘 앞 항아리에 편지를 써놓곤 했는데 어느날 마음 속에 나타난 어머님이 '원망도 후회도 하지 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 잘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후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또한 요양보호사가 된 계기이기도 해요."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한 덕에 사물놀이를 배운 그는 어르신들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여자각설이로 첫 데뷔 무대를 연 그는 삼원효도마을에서도 자주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

치마를 입고 큰 귀걸이를 하고 화장을 하고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면 정신이 없으신 어르신들도 손뼉 치고 아이처럼 웃고, 힘든 일 때문에 지친 직원들도 힘을 내게 된다고.

쉬는 날에는 더 바쁘다. 정다운·늘푸른·희연 병원 등 공연일정이 빡빡해서다. 돈 한 푼 안 받고, 복장에 드는 비용 또한 모두 자비로 하지만 그는 진작에 이렇게 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더 젊었을 때 이런 공연봉사라든지, 요양보호사를 시작했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자리든 '장'이 되면 마음이 변하는 것 같아요. 소박하게 이렇게 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어요. 10년 뒤에는 아마도 어르신들을 더 잘 모시고 있겠죠."

장자방, 요양성직자. 어쩜 이리도 자신에 잘 맞는 명칭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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